마중나온 여행업체 차량에 자전거와짐을 싣고, 우리 일행은 두대의 자가용에 나눠 탔다. 오늘 오후는 칭기스칸 동상 관람으로 일정을 잡았다.
푸른 초지를가로지르며왕복 2차선 도로가 달린다.시리도록 푸른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 끝없는 평원과 낮은 구릉에 펼쳐지는 초록의 향연, 그 안에서 한가로이 노니는 양 떼, 소떼, 말 떼들.....
창을 열고 시원한 바람을 맛본다. 푸릇한 풀 내음이 상큼하다. 철길이 나오고, 전신주가 길게 늘어서고, 철탑이 보이면서 제법 큰 마을이스친다. 빨간 양철지붕이 초원과 잘 어울리는 마을이다. 그것도 잠시, 인간 세상은 온데간데없고, 달려도 달려도 나무 한그루 보이지 않는 광활한 초원이 이어진다. 온통 천지에 골프장이 널려있는 듯 키작은 풀들이 땅을 덮고 있다.
그 행복한 풍광에 끌려 휴대폰으로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수십 장의 사진이 마치 한군데를 수십 차례 찍은 느낌이다. 장엄한 자연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는 사진 찍기를 그만두었다.그냥창밖으로 펼쳐지는 별천지 세상을 눈으로, 가슴으로 담아두기로 했다.
차창으로 스치는 풍경
칭기스칸 동상
"모두가 내 발 밑에 쓰러지기 전 까진 승리 했다고 말하지 마라."고 호령하며 13세기 몽골 초원의 허허벌판 위에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단일 제국을 세우고, 세계사의 흐름을 크게 바꾼 칭기스칸. 몽골은 칭기스칸을 빼고 얘기할 수 없는 나라다. 칭기스칸은 민족의 자부심이자, 여전히 곳곳에 그 숨결이 살아 숨 쉬고 있다. 현대 몽골어로 '칭기스'는 '위대하다'는 뜻이라 한다. 그 이름과 같이, 그는 유라시아 대륙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지형을 바꾼 위대한 지도자인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칭기스칸과 몽골 제국은 세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장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의 유산은 여전히 현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몽골의 대표 랜드마크인 칭기스칸 동상이 있는 공원에 도착했다. 징기스칸 동상은 TV에서 한 두 번 본적이 있지만, 허허벌판에 우뚝 서있는 동상은 보는 사람을 압도할 만큼 장엄하다. 동상의 높이는 40m 이고 하부의 박물관과 합치면 50m 규모로, 그 웅장함이 멀리서도 느껴지는 세계에서 가장 큰 기마상이다. 울란바토르 동쪽 천진벌덕 지역에 있는 이 동상은 2006년 몽골제국 800주년 기념으로 건립을 시작하여 4년 만에 완공한 최근 건축물이다. 이 기마상은 정부에서 건립한 것이 아니고, 몽골의 한 기업가가 자본을 투자해서 건립한 것이라니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전설에서 따르면 칭기스칸이 17살 되던 해에 이 길을 지나다가 길에서 황금 채찍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 전설이 오늘날 이곳 천진벌덕을 몽골의 전설적 영웅이 살아 숨 쉬는 터전으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
기마상 정상으로 가기 위해서는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계단을 이용할 수 있다. 전망대에 올라가니, 몽골의 대초원이 끝없이 펼쳐지며 하늘과 맞닿아 있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대평원은 몽골의 진면목을 보는 듯하다. 전망대에서 직접 마주하는 기마상은 그 규모와 섬세함에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부릅뜬 눈, 굳게 다문 입, 황금채찍을 손에 든 칭기스칸이 말 위에서 드넓은 초원을 바라보며 천하를 호령하고 있다.저 기세라면 누구도 그 앞에 엎드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기상이 지금도 거침없이 살아 숨 쉬는 듯하다.
칭기스칸 동상이 바라보는 방향은 그가 태어나고 세상에 대한 꿈을 키워오던 고향 쪽이라 한다. 그의 동상이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그리 크지않은 또 하나의 동상이 보인다. 이는 칭기스칸의 어머니 후엘룬의 동상이다. 마치 수녀원의 수녀상처럼 가냘픈 모습을 한 그녀가 아들 칭기스칸을 애틋하게 바라보고 있다. 어릴 적 아버지를 잃은 칭기스칸에게 누구보다도 강하고 뛰어난 지도자의 능력을 갖추게 하는 데 가장 큰 영향력을 준 분이 어머니였다. 극도로 곤궁에 처한 상황에서도 어머니 호엘룬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자식들을키워냈다.
"대제국을 건설하기 원한다면 먼저 모든 사람들을 포용해라. 가까운 사람들을 포용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거대한 제국을 품을 수 있겠느냐."
어머니의 이 말 한마디는, 여러 부족끼리 약탈과 살상을 일삼던 부족들을 포용력으로 통합하여 대제국을 건설하는 힘의 원천이 되었다 한다.
아들 칭기스칸을 미소로 바라보고 있는 어머니의 사랑이 800여 년의 세월을 넘어 잔잔하게 흐르고 있다. 이를 바라보는 방문객의 마음이 따뜻하고 애잔하다.
어머니 후엘룬과 아들 칭기스칸 동상
박물관 전시물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칭기스칸의 무덤
테무진(칭기스칸의 어릴 적 이름)은 1162년경 몽골 초원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독살당한 후 가족은 부족에서 쫓겨나 생존을 위해 처절하게 싸워야 했다.그는수많은 역경을 겪으면서도 강한 의지와 지도력을 키우며, 단합되지 않은 몽골 부족들을 통합하여 역사상 최대 규모의 단일 제국을 세우고, 세계사의 흐름을 크게 바꾸었다.
칭기스칸은 1227년, 몽골로 귀환하던 중 쓰러져 66세의 나이로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쳤다. 그의 정확한 사망 원인은 여전히 불분명하지만, 사냥 중 말에서 떨어져 크게 다쳐 회복하지 못하고 끝내 죽음에 이르렀다는 설이 유력하다. 몽골군은 칭기스 칸의 관을 들고 회군하여 초원으로 돌아와 안장했다. 당시 몽골군은 운구 행렬 도중 조우하는 모든 생물을 죽여 칭기스칸의 매장지를 극비에 부쳤다. 이는 무덤의 비밀을 지키고자 하는 몽골의 문화와 역사 속에 깊이 뿌리 박혀 있는 전통과 신화에 기인했다고 한다.
칭기스칸의 무덤 위치에 대한 미스터리는 수세기 동안 많은 역사가들이나 탐험가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왔다. 그러나 그의 무덤은 아직도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은 채, 몽골 평야 어느 곳에서 위대한 몽골제국의 부활을 꿈꾸며 영면하고 있다. 그의 무덤에 대한 탐구는 끝나지 않은 여정으로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만약 그의 무덤이 발견된다면, 몽골의 고대와 현대의 연결고리를 푸는 현대사의 가장 위대한 발견 중 하나가 될 것이 분명하다.
진시황릉이 한 농부에 의해 우연히 세상 밖으로 나왔 듯이, 언젠가 위대했던 영웅의 재발견으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날도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