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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환 Dec 09. 2024

3. 에르덴의 첫날밤

에르덴의 조용한 마을


우리의 숙소가 있는 '에르덴'은 수도 울란바토르로부터는 차로 약 두어 시간 거리에 있다. 산과 강이 휘감고 있는 마을은 늑하고 평온하다. 마을 주변으로 토르강이 흐른다.  숲이 우거진 강을 따라  몇 개의 작은 마을들이 이어지고, 너머 높은 산이 길게 달리고 있다. 이곳에 오는 동안 너른 초원만 보다가 큰 산이 있는 풍경이 오히려 생경하다.


숙소는 몇 개의 게르와 통나무 집(캐빈)들이 있다. 우리는 몽골 전통 가옥인 게르에서 잘 것을 기대했지만, 게르 보다는 불편함이 적은 현대식 통나무 집으로 정했다 한다. 아쉽지만 캐빈에 짐을 풀었다. 숙소는 넓은 방에 2층 침대가 있고, 수세식 화장실과 샤워실도 있어 크게 불편하지 않아 보였다.

에르덴의 숙소

'허르헉' 만찬


내심 몽골 음식에 대한 기대를 안고 식당에 모였다. 아침부터 종일 시달린 몸을 달래 줄 술도 준비를 했다.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구입한 양주 1병과 소주 10 팩이 식탁 위에 먼저 자리를 했다. 곧이어 밑반찬이 깔리는데 김치가 눈에 띈다. 큰 기대 없이 김치 맛을 본 우리는 깜짝 놀랐다. 집에서나 맛볼 수 있는 감칠맛이 난다. 주방장이 몽골 여성인데, 한국에서 우리 음식을 배웠다고 가이드가 귀띔을 한다. 파김치와 무생채도 나왔는데 전혀 거부감 없는 손맛이다. 먼 이국 땅에서 기대 못한 상차림에 모두들 환호한다. 잠시 후, 커다란 쟁반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기가 푸짐하게 나온다. 불에 달군 돌을 양고기와 야채 등이 담긴 솥에 넣어 익혀 만든다는 몽골의 전통 음식 '허르헉'이다. 꼬치 양고기는 한국에서도 많이 접할 수 있는 음식이지만, 이렇게 푹 삶은 양고기는 처음이다. 잡내도 없고 질기지도 않다. 허기진 다섯 입이 배를 채우느라 바쁘다. 술잔이 오가고 떠들썩한 행복이 춤을 춘다.

허르헉

비와 우박, 천둥과 번개, 그리고 붉은 노을


조금은 이른 만찬이 얼큰하게 익어갈 무렵, 갑자기 비가 내리더니 점차 빗줄기가 굵어진다. 잠시 후, 천둥과 번개를 동반하며 비가 우박으로 바뀐다. 하늘이 씨꺼먼 먹구름으로 덮이며 사위가 순식간에 어둠에 갇힌다. 갑자기 하늘이 무너질 같은 두려움이 엄습한다. 잔디 깔린 마당에 굵은 우박이 퍼붓듯이 쏟아지면서, 콩 튀듯 콩닥콩닥 튀어 오른다. 저쪽 언덕이 금세 눈 내린 것처럼 하얗다. 순식간에 초록의 세상이 하얀 세상으로 변했다. 한참을 우당탕탕 소리 지르던 하늘이 서서히 평온을 찾는다. 잠시 후 서쪽 하늘 구름이 걷히더니, 놀랍게도 저녁 해가 얼굴을 내밀며 붉게 타오른다. 모두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하늘이 내리는 신비로운 조화를 숨죽이며 바라보았다.


자연의 신비 - 우박과 석양

잠 못 이루는 첫날밤


도저히 쉽게 잠을 이룰 것 같지 않은 에르덴의 첫날밤이다.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은 다섯 청춘들이 캐빈 숙소에 다시 모였다. 식당에서 가져온 안주로 조촐한 술자리를 마련했다. 아직은 젊은 청춘들의 술잔이 거침없이 오간다. 지난 국토종주 길에서 우리가 숱하게 그리던 해외 라이딩이 현실이 된 밤이다. 우리가 뿌린 씨앗에 희망의 물을 주며 키운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 열매를 맺은 것이다. 내일 우리는 몽골의 거침없는 초원을 달릴 것이다. 상상 속 그 길을 그리며 에르덴의 밤이 깊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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