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벗어던진 길이 본격적으로 내륙 산간으로 들어선다. 지금 우리 행렬은 아키요시다이 국립공원을 향하고 있다. 서서히 경사가 급해지면서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나타난다. 그 흔한 나무 하나 보이지 않는 민둥산 언덕들이 완만한 굴곡을 이루며 광활하게 펼쳐진다. 아키요시다이 국립공원에 들어선 것이다. 굽이굽이 굽어진 길이 뱀처럼 산을 휘감고 기어오른다. 만만치 않은 오르막을 헐떡이는 숨을 몰아쉬며 페달을 밟는다. 한달음에 가기엔 무리다. 두 번을 쉬고, 여러 개의 고개를 넘어서야 정상 전망대에 도착했다. 입구에 한글과 영어, 중국어로 된 안내판이 눈길을 끈다. 이곳은 일본의 대표적인 카르스트 지형으로, 3억여 년에 걸쳐 만들어진 450여 개의 종유굴이 있어 람사르 습지로 등록되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방대한 면적을 가진 이 공원에서는 사계절 다양한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매년 2월 말, 고원을 불태우는 전통 행사를 비롯, 7월에는 벤텐 연못 송어 잡기, 동굴 박쥐 투어, 불꽃축제, 별 관측 행사, 8월에는 바람막이 축제가 열려 태풍을 막고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지역 민속 축제도 열린다. 10월, 지오파크 울트라마라톤 대회는 고원 지형을 따라 달리는 장거리 대회로 장엄한 대자연을 체험할 수 있다 한다.
전망대에 올랐다. 360도 파노라마 전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원형으로 된 전망대는 자연의 풍광을 해치지 않을 만큼 소박하게 지어졌다. 끝없이 펼쳐지는 카르스트 지형의 완만한 곡선들이 3억여 년 전 원시의 숨결을 토해내고 있다. 공원의 면적이 약 45 km²에 이른다 하니 그 규모를 가늠하기 조차 쉽지 않다. 곳곳에 고대 산호초가 융기해 형성되었다는 바위들이 아기자기한 얼굴을 하고 서로에게 미소를 던지고 있다.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고 예쁘다. 장구한 세월을 이겨내고 서 있는 그들 속에 가만히 들어가 본다. 한줄기 바람이 뺨을 스친다. 대자연 속 한 톨 모래알에 지나지 않을 내가 억겁의 사연을 품은 대자연의 속삭임을 듣는다. 아늑하고 편안하다. 어쩌면 조물주가 이 땅을 만들 때는 '편안한 쉼터'를 선물하고자 만들었을 거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우리 여행의 주목적이 라이딩이기 때문에 가야 할 길이 먼 행렬은 서둘러 페달을 밟아야 한다. 이곳의 자랑인 석회동굴을 비롯해서 이곳저곳 둘러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억새 꽃 흩날리는 늦가을이나, 눈 내리는 어느 겨울날, 시리도록 하얀 벌판을 바라보며 대자연의 숨결을 느끼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아쉬움을 안고 길을 떠난다. 여행의 끝은 늘 아쉬움이다. 그래도, 다시 한번 와보고 싶은 곳을 여행한다는 것, 그것은 여행객의 행운이자 행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