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 따라가는 길
압록강단교를 지나 길가에 버스가 정차한다. 모두들 들뜬 마음으로 트럭에서 내리는 각자의 자전거를 받아 들고 첫 라이딩을 준비한다. 드디어 압록강 라이딩이 시작된다. 정오를 넘긴 시간, 해는 중천에 떠있고 햇살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열일곱 명의 라이더들이 긴 행렬을 만들며 서서히 출발한다. 압록강을 따라 이어지는 공도는 왕복 4차선으로, 넓고 쾌적하다. 특히 갓길이 충분히 확보되어 있어 라이딩이 편하다. 시원하게 뚫린 길을 달린다.
국토대종주를 하면서 한강을 비롯, 낙동강, 금강, 영산강, 섬진강 등 5 대강을 두루 달렸지만, 국토의 최북단 압록강을 달릴 수 있다는 것은 꿈에서나 상상해 본 일이었을 뿐이었다. 지금 우리 '열혈청춘만세'가 막연히 상상해 온 꿈이 현실이 되어, 한반도에서 가장 긴 압록강을 따라 달리고 있다. 벅찬 감동이 두 바퀴를 타고 전해온다.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이 작열하는 햇살을 머금고 은빛으로 반짝인다. 강물 위에는 새들이 자맥질을 하며 노닐고, 작은 배 한 척이 강을 가르고 있다.
달리는 도로 오른쪽에는 육중한 철책이 강 따라 길게 드리워져있다. 철책 너머 흐르는 강은 말이 없는데, 인간들의 욕심이 철책을 치고 내 땅 네 땅을 다투고 있다. 강 건너 한치 앞이 내 나라 땅인데, 철책에 막힌 땅을 바라보는 가슴 한 켠이 답답하고 슬프다. 강 너머 평온하게 스치는 북한 땅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고구려의 역사가 묻힌 호산장성
강 따라 10여 km를 달렸다. 선두가 정지신호를 한다. 넓은 광장으로 들어서니 많은 관광객들로 붐빈다. 광장에는 몇 개의 누각을 얹은 성문이 길게 뻗어있고, 뒤로는 그리 높지 않은 산이 드리워져있다. '호산장성, 만리장성 동단기점(虎山長城 萬里長城 東斷起點)이라는 대형 구조물이 눈에 들어온다. 뜻밖에 만리장성이라는 푯말을 보며 조금은 의아한 마음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데, 가이드가 전하는 진실을 들으니 저으기 놀랍다.
압록강과 애하가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 호산(虎山)은 호랑이가 누워있는 형상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중국은 1990년대 초반부터 압록강변 호산에서 만리장성의 석축을 발견했다며 서둘러 장성 신축 공사를 착수했다. 그러나 이 성은 본래 고구려의 ‘박작성(泊灼城)’이 있던 자리였다. 박작성은 요동반도에서 평양으로 이어지는 교통로를 방어하는 성의 하나였다. 당나라군이 압록강을 거슬러 침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고구려가 쌓은 성이다. 고구려 보장왕 7년(648) 당나라가 쳐들어 왔을 때 '박작성은 산을 이용하여 요새를 세웠고, 압록강으로 튼튼하게 막혀 있었기 때문에 함락시키지 못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특히, 앞은 볼록하고 뒤는 뾰족한 전형적인 고구려양식의 쐐기돌이 고구려의 성이었음을 중국 역사학자들도 인정하였다 한다. (네이버 자료 참조)
그러나 중국 정부는 동북공정을 시작하면서 성터만 남아 있던 이곳을 정비하고 새롭게 성을 쌓아 호산장성이라 부르고 있다. 2009년 9월, 중국 정부는 만리장성의 길이가 2551.8km가 늘어났다고 발표한다. 기존의 동단기점이 ‘신해관’이 아니라 호산장성이 된 것이다. 동쪽으로 늘어난 만리장성에 중국의 성이 아닌 고구려와 발해의 성이 포함된 것이다.
호산장성 정상에 오르면 압록강과 북한땅이 훤히 보인다 한다. 아쉽지만 호산장성에 오르지는 못하고, 멀찍이 드리워진 산성을 바라보며 발길을 돌린다. 호산은 말이 없지만, 오늘도 역사의 진실을 묵묵히 품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