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벅찬 압록강 첫 라이딩은 50km로 마무리했다. 오후 4시가 조금 넘은 시간. 아쉽지만, 숙소가 있는 통화시까지 가려면 여기서 멈춰야 한단다. 트럭에 자전거를 싣고 버스에 올랐다. 차창 밖으로 가도 가도 끝없는 옥수수밭이 펼쳐진다. 중국의 남쪽 지방 옥수수는 거의 가축 사료로 쓰이는데 반해, 이곳 동북 지방은 옥수수 재배에 적합한 기후여서 대부분 식용이고 수출까지 한다. 특히, 옥수수는 타 작물에 비해 손이 덜 가기 때문에 적은 인력으로 광활한 땅에 재배가 가능하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옥수수를 심어놓고 익을 때까지 도시로 나가 일을 하다 돌아오는, 이른바 '농민공'이 많다 한다. 농민들의 투잡인 셈이다.
옥수수밭의 추억
너른 산등성이에도, 좁은 들녘과 길가에도 옥수수가 지천으로 깔려있다. 나 어릴 적, 고향땅은 논배미가 넓게 펼쳐진 평야였지만, 밭고랑에는 어김없이 옥수수가 자랐다. 옥수수밭에는 제법 크고 둥근 풍뎅이가 흔했다. 그놈을 잡아 다리를 자르고 뒤집어 놓으면, 몸을 뒤집어 날아가려고 안간힘을 쓰며 빙글빙글 잘도 돌았다. 지금 생각하면 풍뎅이한테 몹쓸 짓을 한 것이 미안하지만, 딱히 놀꺼리도 없는 따분한 하굣길, 동무들과 함께 땀을 뻘뻘 흘려가며 풍뎅이와 함께 낄낄댔다. 풍뎅이 놀이가 심드렁해지면, 우리는 옥수숫대를 잘라 이빨로 껍질을 벗기고 씹어 먹으며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껍질을 벗기다가 자칫 입술이 찢어지기 일쑤였지만, 그 단맛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먹을 것 없던 시절, 옥수숫대는 여름철 우리들의 좋은 간식거리였다. 지금도 그 아득한 단맛은 내 혀끝에 추억처럼 남아있다.
가이드가 이 지역 특산물 옥수수 맛을 보라며 맥주 한 캔과 함께 나눠준다. 옥수수가 크고 찰져 맛이 좋다. 에어컨 빵빵한 버스 안에서 시원한 맥주로 목을 축이며, 허기진 배를 채우니 살 것 같다. 문득 어릴 적 할머니가 삶아 주시던 옥수수가 생각난다. 옥수수 하나도 참으로 귀했던 시절, 사카린으로 단맛을 내어 쪄낸 옥수수는 그리 맛날 수 없었다. 옥수수 알맹이 한 알 한 알 아껴가며 훑어내리던 시절, 그 빛바랜 흑백 사진 기억은 아직도 생생한데, 세월은 훌쩍 뜀박질해서 나를 이곳까지 데려왔다. 먼 이국 땅에서 내 어린 시절과 그리운 할머니를 떠올릴 수 있다니, 이 또한 여행의 행복이다.
졸본성과 오녀산성
하늘은 번한데 비가 내린다. 도로가 젖을 만큼 한바탕 쏟아지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그친다. 여우비인가 보다. 버스는 길림성 경계를 벗어나 요녕성으로 들어선다. 가이드가 차창을 가리키며 밖을 보라 한다. 멀리 산자락 하나가 길게 둘러있다. 고구려의 첫 번째 수도였던 졸본성이다. 고구려 역사상 단 한 번도 함락되지 않은, 해발 804m 산 정상에 있는 성이다. 성의 전체 둘레는 4.57km에 달하지만, 대부분은 자연 절벽을 그대로 이용하였고, 돌로 성벽을 쌓은 곳은 남벽과 동벽의 일부 구간에 불과할 정도로 천혜의 요새였다.
나는 10여 년 전, 현직에 있을 때 졸본성을 비롯, 광개토태왕비, 장수왕릉, 압록강, 백두산 등 고대 고구려 유적지를 답사한 적이 있다. 그때도 가슴 절절히 느꼈지만, 우리가 달리고 있는 이 땅이 옛 고구려 땅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가슴 아픈 일이다. 성 내부에서 고구려 초기의 대형 건물지와 각종 유물이 발견되었음에도 동북공정으로 왜곡되고, 이 땅을 지키며 호령하던 고구려인이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전락해 버린 현실이 몹시도 아프다. '오녀산성(五女山城)'이란 낯선 이름으로 변해버린 졸본성이 스쳐가는 여행객을 묵묵히 내려다보고 있다. 왠지 그 모습이 쓸쓸하다.
참으로 부러운 땅
길림성에서도 그랬듯이, 요녕성을 넘어서 두어 시간을 달렸는데도 옥수수밭은 끝이 없다. 국토면적 960만㎢, 국경선 27,400km, 세계에서 네 번째, 우리나라 보다 95배나 큰 나라가 중국이다. 중국 사람들이 태어나서 다 못해보고 죽는 세 가지가 있는데, 영토를 다 밟아 보지 못하고, 언어를 다 못 배우고, 음식도 다 못 먹어 보고 죽는단다. 중국은 지금도 방언과 소수민족 언어를 포함하면 100개 이상의 언어가 실제 사용되고 있다 한다. 또, 중국 8대 요리를 비롯, 수많은 지역·민족 음식은 수만 가지에 이른다니 그 말이 실감이 난다.
좁은 땅덩어리에서 아등바등 살고 있는 우리, 그나마 분단으로 인해 허리가 잘린 현실을 생각하면 참으로 부러운 나라다. 부질없는 생각이지만, 이 광활한 고구려, 부여 땅을 우리가 지켜내지 못한 것이 절절히 아쉽고, 또한 부럽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 했는데, 부러운 건 부러운 것이다.
저무는 두 번째 밤
3시간을 달려 어둑해질 때쯤 통화시에 도착했다. 고단한 하루가 저문 저녁, 걸축한 식탁이 차려지고 독한 중국 술과 소주와 맥주가 어우러진 저녁만찬이 하루의 피로를 덜어준다. 어느 정도 배가 부르니 술잔 돌아가는 게 더디다. 옆자리 아우가 '술잔 룰렛게임'을 제안한다. 술잔을 채우고 원탁 테이블을 돌려 잔이 멈추는 곳에 앉아 있는 사람이 잔을 비우는 게임이다. 처음 해보는 게임인데 분위기를 돋우는 데는 그만이다. 수십 차례 회전 테이블이 돌아가고 나니, 조금은 서먹한 얼굴들이 어느새 하나가 되고 있다. 우리의 여행 이틀째 밤이 왁자한 웃음으로 행복하게 익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