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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과 신의주

by 윤기환

언뜻 잠에서 깨어나니, 작은 창으로 스며든 아침 햇살이 눈꺼풀 위에 무겁게 내려앉아 있다. 부신 눈을 비비며 갑판에 오르니, 배는 여전히 바다 위를 달리고, 해는 이미 중천에 떠있다. 선상 일출을 보고 싶었는데 놓친 것이 못내 아쉽다.


식당으로 하나둘 모이는 낯익은 얼굴들이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모두들 아침 식사는 시늉에 그치고, 하선준비에 바쁘다. 단동항에 도착하니 현지시간으로 8시. 우리나라 보다 1시간 늦게 간다. 입국 절차가 지연되면서 10시가 다 되어서야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번 여행의 주목적은 백두산 라이딩이다. 하지만, 워낙 넓은 중국땅에서 여정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긴 버스 이동 시간을 감내해야 한다. 눈만 뜨면 두 바퀴에 몸을 싣고 달리던 몽골, 일본 라이딩과는 사뭇 다른 일정이다. 버스에 오르니 가이드가 자신을 '주서방'이라고 불러달라며 넉넉한 웃음으로 우리를 맞는다. 그의 웃음이 긴 입국 절차에 지친 우리 일행을 행복하게 한다.


중천에 뜬 태양과 함께 한 하선


압록강과 신의주를 만나다


단동(丹東)은 압록강 하구에 위치한 도시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압록강이 길게 따라오고, 강 건너편에는 신의주 市가 손에 닿을 듯 뻗혀있다.

압록강(鴨綠江)은 두만강, 송화강과 함께 백두산에서 발원하는 세 개의 강 중 하나로, 한반도에서 가장 긴 강이다. 총길이가 790여 ㎞. 낙동강과 한강에 비하여 200 km 이상 길다. 유구한 세월을 흐르면서 압록강이 만들어 낸 섬은 무려 205개나 된다 한다. 1962년 체결된 '조중변계조약(朝中邊界條約)'에 의해 북한이 127개, 중국이 78개씩 나눠 가졌다. 그중 사람이 사는 섬은 모두 10개. 조약 체결 당시 그 섬에 살던 주민이 어느 쪽 백성인가에 따라 나눴는데, 모두 북한 소유가 되었다 한다. 가장 큰 섬은 비단도(26 km²)이고, 그다음으로 위화도, 다지도, 황금평 순이다. '녹도'라는 섬은 얼마 전까지 사람이 살았으나, 최근 대홍수로 인해 살던 집들이 모두 떠내려가면서 대부분의 섬들처럼 새들의 고향으로 변해버렸단다.


압록강을 따라 달리는 차창 너머로 신의주 시가 보인다. 신의주는 일본이 1904년에 러일전쟁을 하기 위해 경의선을 급조하면서, '새로운(新) 의주'라는 뜻에서 만든 도시라고 가이드가 귀띔한다. 그 당시 신의주는 상습적으로 침수되는 저지대로, 농사도 포기한 버려진 갈대밭에 지나지 않았던 것을 일제가 대륙 침략 기지로 개발하면서, 수차례에 걸쳐 이중으로 제방을 쌓아 시가지를 이루었다 한다. 우리가 모르는 사실들을 재밌게 얘기해 주는 가이드가 여행의 흥미를 더해준다. 모두들 귀를 쫑긋하고 질문도 한다. 이런 가이드의 얘기를 놓치지 않고 적어 가면서도 차창으로 스치는 풍경에 눈길을 뗄 수가 없다.


당시 신의주는 경의선의 최북단역이자 종착역이었다. 분단으로 인해 경의선 철마는 달리고 싶어도 달리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통일 이후 서울역에서 신의주역까지 아니, 부산역에서 신의주역까지 이어지면 장장 900여 km를 달릴 수 있을 것이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고 애달픈 눈빛으로 서있는 도라산역 푯말의 소원을 생각한다. 우리 세대는 몰라도, 적어도 후세들은 경의선 철로를 따라 신의주를 거쳐 시베리아까지 이어지는 벅찬 행복을 품을 날이 오기를 마음으로 기도해 본다.


신압록강대교 앞에서 잠시 하차한다. 전장 3km가 넘는 다리가 북한땅 신의주를 향해 길게 뻗어 있다. 날씬하게 뻗은 하얀 다리를 바라보며 건너지 못하는 우리 땅, 갇혀 있는 우리 땅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강을 따라 조성된 가로공원을 걷는다. 매미 소리 자지러지고, 햇살은 찌는 듯이 내리쬔다. 살이 익는다.


멀리 신의주가 바라보이는 신압록강대교


역사의 물굽이가 소용돌이친 위화도

단동 시내에서 오후 라이딩을 위해 조금은 이른 점심식사를 했다. 생선, 가지찜, 샐러드 등 10여 가지 음식이 푸짐하다. 배불리 먹고 났는데도 음식이 절반은 남는다. 모자라지 않게 푸짐하게 차리는 것이 그들의 음식문화라고 하지만, 남은 음식이 아깝다.



다시 버스에 올랐다. 강을 따라 달리며, 가이드가 역사로 기억될 몇 군데를 소개한다. 일제 때 강제 징수를 위해 사용했다는 세관 건물과, 임시정부 요원들이 배 타고 상해로 이동하기 위해 드나들었다는 작은 나루도 보인다. 월양도를 지나니 민족의 아픔을 지닌 압록강 단교(斷橋)가 보인다. 많은 관광객들로 붐빈다. 여행 마지막 날 단교를 다시 만날 수 있다 해서 차창으로 스치는 풍경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단교를 지나니 위화도가 나타난다. 역사의 물굽이가 크게 소용돌이쳤던 곳, 바로 '위화도회군'의 현장이다.

1388년 5월 요동(遼東) 출정을 위해 이 섬에 모여 있던 수만 대군은 우군도통사 이성계의 지휘 아래 압록강 도강(渡江)을 포기하고 말머리를 개경으로 돌렸다. 요동 정벌의 대망은 사라지고 역성혁명(易姓革命)을 통한 새로운 왕조의 탄생을 예고하는,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사건이었음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위화도가 압록강의 섬이라는 사실, 그것도 여의도보다 훨씬 큰 섬이라는 사실은 오늘 처음 알았다. 그런 나 자신이 조금은 부끄럽다.


위화도는 최근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한다. 단동시가 바로 바라보이는 위화도는 너른 옥수수밭을 일구며 살아가는 농촌 마을이었으나, 근대화 사업의 일환으로 대대적인 공사 끝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비닐하우스가 즐비한 신농업단지로 탈바꿈하였다. 놀라운 것은 그 공사 기간이 작년 8월~12월까지 24시간 불을 밝혀가며 4개월 만에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고급스럽게 보이는 10여 층 규모의 아파트들이 강 건너 단동시와 경쟁하 듯 나란히 달리고 있다.

차창으로 스치는 압록강 단교와 위화도 전경


이런저런 상념 속에 차창으로 흐르는 압록강을 바라본다. 강 이편에서 부르면 대답할 수 있는 거리건만, 배가 있어도 ‘건널 수 없는 강’이 된 지 오래다. 내 나라이면서도 마치 남의 나라처럼 이국 땅에서 내 조국 산하를 바라본다. 아프다. 물빛이 오리머리 빛을 닮았다고 해서 붙였다는 압록강(祿). 그 푸른빛을 가진 압록강이 마치 '망각의 강'처럼 말없이 흐르고 있다.


대하무성(大河無聲) 인가? 대하무심(大河無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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