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얼굴’ 천지의 여운을 안고 내려온 남문. 빗줄기가 잔잔하게 땅을 적시고 있다. 우리를 기다리는 버스까지 애써 달렸지만, 비는 결국 옷자락을 적셨다. 쌀쌀한 기운이 몸속으로 스미면서 한기가 든다. 버스에 오르자마자 모두들 히터를 틀라고 아우성이다. 한여름에 히터라니, 인간의 몸은 참으로 민감하고 간사하다.
엄리대수(奄利大水), 송화강
이제 우리는 송화강 상류 계곡을 향한다. 백두산 천지에서 발원한 송화강은 하얼빈을 지나 아무르강에 이르는 1,960km의 장대한 물길이다. 고대 부여인들은 이 강을 '엄리대수'라 부르며 그들의 터전으로 삼았다. 또, 고구려 시조 주몽이 졸본으로 내려오던 길에 물고기와 자라의 도움을 받아 건넜다는 전설도 이 강에 깃들어 있다. 근대에는 독립군의 함성이 울리던 무대이기도 했다. 오늘도 강물은 켜켜이 쌓인 역사를 안고 흐른다. 눈앞의 풍경조차 낯설지 않고 정겹다.
차창 밖으로는 끝없이 옥수수밭이 펼쳐진다. 들녘엔 사람의 모습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첩첩산중과 끝없는 밭만이 이어질 뿐, 고요가 강물처럼 흐른다. 송화강은 이 광활한 평야를 적시는 젖줄이다. 마치 어머니의 가슴처럼 대지를 포근하게 감싸며 흐른다.
송화강 래프팅
두 시간 만에 닿은 선착장에는 붉은 구명조끼를 두른 사람들로 북적인다. 비옷과 덮개까지 걸친 모습이 우스꽝스럽지만, 모두의 얼굴에는 행복이 번져 있다.
보트는 거센 물살에 이리저리 휘청인다. 처음에는 물에 빠질까 두려웠지만, 곧 그 두려움은 강물에 씻기듯 사라진다. 동료들의 보트와 부딪히며, 물을 뿌리고 장난을 치다 보니 강은 금세 놀이터가 된다. 해맑은 웃음소리가 물살을 가르고 울려 퍼진다. 40여 분의 뱃길은 어른의 얼굴을 잠시 벗겨내고, 천진한 아이로 돌려놓았다.
주린 배를 채우는 점심시간. 진수성찬에 맥주까지 식탁에 오르자 모두들 눈이 반짝인다. 가볍게 술잔을 부딪히며 무사히 달려온 길을 자축한다. 배부르고 행복한 돼지가 된 우리를 태운 버스가 빗길을 가르며 통화시로 향한다. 차창에 흩날리는 빗방울이 작은 강이 되어 흘러내린다.
마사지와 노천탕
여행의 또 다른 선물은 마사지였다. 지친 몸을 맡기고 눕는다. 한숨 푹 자고 난 것처럼, 눌려 있던 근육이 풀리며 바람결처럼 가벼워진다. 우리가 묵을 호텔 옥상에는 노천탕이 있다. 짐을 벗어던지고 노천탕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는 순간, 며칠 동안 쌓였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진다. 어스름이 내려앉은 평야 너머, 멀리 백두산 실루엣이 서서히 어둠 속에 잠긴다. 어제와 오늘, 그 품에 안겨 달리던 순간들이 온천수의 온기가 되어 행복으로 스민다.
생일 파티
저녁은 삼겹살 파티다. 내일은 압록강 뱃길만 남아 있어 모두가 한결 가벼운 마음이다. 웃음이 무르익을 즈음, 갑자기 불이 켜진 케이크가 등장한다. 8월이 생일인 네 명의 라이더를 위한 여행사 측의 깜짝 선물이다. 먼 이국땅에서 맞는 뜻밖의 축하 노래와 환호, 부딪히는 술잔 소리가 식당에 가득 퍼진다.
여행은 단순한 길 위의 시간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빚어낸 소중한 추억의 시간이다. 노래와 술잔이 어우러지며, 먼 이국땅의 밤이 따뜻한 행복으로 익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