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의 지류, 혼강
상큼한 햇살이 창을 두드리며 방 안으로 성큼 들어선다. 창밖으로는 혼강을 따라 통화시내 건물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강은 아침 산책에 더없이 어울린다. 이른 시간 강변에는 하루를 서둘러 여는 사람들이 스쳐 간다.
고구려 사람들이 ‘비류수’라 불렀던 강, 압록강 지류 중 가장 큰 강이 혼강이다.. 주몽이 도읍으로 삼았던 졸본성을 끼고 흐르던 강, 곧 고구려 건국 신화를 품은 강이니, 민족의 심장이 처음 뛰기 시작한 물줄기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압록강과 송화강. 혼강은 이곳 동북 3성의 주요 젖줄이다. 그 강줄기를 따라 어딜 가도 우리 옛 흔적이 스며 흐른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단동으로 향하는 버스가 출발한다. 네 시간 남짓 달려 오전 11시, 광화도의 ‘복사골’이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이름 그대로 이곳은 사방에 복숭아밭이 펼쳐 있다. 단동 일대는 복숭아뿐 아니라 밤, 겨울딸기, 블루베리의 고장이라 한다. 풍요로운 들판을 따라 압록강이 달린다.
민족의 상처, 압록강 단교
선착장에 닿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압록강 단교다. 이 다리는 1911년, 일본이 군수 물자 수송을 위해 지은 철교였다. 그러나 1950년 11월 한국전쟁 중 유엔군의 폭격으로 끊겨 버린 뒤, 지금껏 분단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잘린 다리가 마치 서로를 향해 손을 내밀다 미처 닿지 못한 듯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다. 75년의 긴 세월이 흘렀지만, 다리는 여전히 상처 난 기억을 품은 채 강 위에 멈춰 서 있다.
우리가 탄 배가 단교 밑을 지난다. 배 안에는 중국인들로 북적인다. 사진을 찍으며 무언가에 신이 난 듯 특유의 시끄러운 목소리와 웃음이 가득한데, 왠지 그런 분위기가 씁쓸하다.
중국 측은 단교를 관광지로 꾸며 입장료를 받고 개방하고 있다. 다리 위에는 총알 자국과 전쟁 사진들이 남아 있어 역사의 상처를 직접 마주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모해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반면, 북한 쪽 다리는 입구에 작은 초소 하나만 덩그러니 서 있을 뿐, 아무런 보존도 없이 방치되어 있다. 그 대비가 가슴을 아리게 한다. 최근, 북한은 신의주에서 출발하는 압록강 유람선 운항이 4월 중순 이후 빈번하게 포착되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오늘은 북한 인공기를 단 유람선은 보이지 않는다.
오늘도 압록강은 흐른다
배는 강물을 헤치며 북쪽을 향해 나아간다. 눈앞에 다가오는 신의주의 산과 들은 예전보다 한결 푸르다. 야트막한 산자락에는 옥수수와 콩, 이름 모를 작물들이 자라고 있고, 곳곳에 과수원도 보인다. 십여 년 전 내가 보았던 민둥산은 이제 울창한 숲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자연은 묵묵히 회복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강가에 길게 드리워진 철책은 또렷한 상흔처럼 남아 있다. 강변 마을 언덕 위에는 초소 하나가 멋쩍은 듯 서있다. 인적이 드문 길에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사람이 보인다. 반가운 마음에 손을 흔들었지만, 무심하게 사라진다.
압록강은 우리 민족의 영산, 백두산에서 발원하여 긴 역사를 안고 흘러왔다. 고조선을 시작으로 고구려와 발해, 고려와 조선의 흥망, 근대의 청일·러일전쟁과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이 강은 늘 경계선이었고 전쟁터였다. 민족의 운명이 이 강을 따라 흘러왔고, 아픔 또한 함께 흘렀다.
오늘도 압록강은 묵묵히 흐른다.
잘린 다리를 안고, 보이지 않는 국경선을 가슴에 품은 채, 말없는 아픔과 기억을 전하며 흐른다. 이 강이 안고 있는 아픈 상처를 씻어내는 날이 빨리 오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하며 배에서 내린다. 말없는 강물이 나에게 “또 오라"며 손짓하듯 출렁인다.
어제도, 오늘도 그랬던 것 처럼, 내일도 압록강은 쉼 없이 흐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