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둑한 논길, 먹칠을 한 듯 사위가 온통 까맣고, 스산한 바람이 뺨을 스친다. 보름이 다 되도록 객지 잠을 자고 보니, 몸도 마음도 서서히 지쳐간다. 빈 방문을 열고 들어서니, 서늘한 외로움이 대굴대굴 구르며 나를 맞는다.
사는 일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라 했던가?......
집에 전화를 걸어 어머니와 아내, 아이들 목소리를 듣고 나니 맘이 한결 편하다. 내친김에 친구들 두엇과 통화를 하고 핸드폰을 내려놓으니, 또다시 찾아오는 외로움......
그래도 곧 돌아갈 집이 있고, 반갑게 술 한잔 기울일 친구가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외로움 속에도 그런저런 행복이 숨어있기에 견딜만한 것일 게다.
TV가 혼자 떠들다가 일기예보를 전한다. 내일은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그동안 쉬는 날 없이 달려왔으니 하루 정도는 빗소리 들으며 아무 생각 없이 푹 쉬고 싶다. 창문을 여니, 하늘은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빗방울을 서서히 거두어들이고 있다.
내일은 雨요일이었으면, 그랬으면......
2.
이른 새벽, 잠 깨어 창문을 여니 일기예보처럼 하늘이 심상치 않다. 그러나 기대했던 비는 쏟아지지 않는다.비가오지않으니 일을 쉴 수는 없다. 예정대로 일터로 향했다.
종일 구름이 시커멓게 몰려다니고, 바람도 심심찮게 불어대더니, 일을 마치고 해가 서녘에 걸릴즈음에야 하늘이 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린다. 가늘게 훌쩍거리다가 점점 거세지더니, 이윽고 굵은 눈물을 주룩주룩 쏟아낸다. 한바탕 펑펑 퍼붓다가 그치고, 또다시 천둥 번개를 동반하며 쏟아붓기를 반복한다.
비 내리는 지평선 평야.
길과 들판이 온통안갯속에 파묻혀 버렸다. 희미하게 그어진 길을 따라 조심스레 차를 몰고 달린다. 차창으로 뿌연 운무가 스치고, 후드득 후두두둑 굵은 빗방울이 앞유리창을 사정없이 때린다. 와이퍼가 쉴 새 없이 팔운동을 해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