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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

by 윤기환 Feb 25. 2024


시월도 하순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찰벼를 주로 재배하고 있는 이곳 백산 일대는 메벼를 재배하는 다른 지역보다 추수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황금 들녘을 콤바인이 바삐 움직이고 있다. 그 육중한 기계가 지나가는 길마다 탈곡하고 토해내는 볏짚이 길게 늘어지고, 그 뒤를 농부의 환한 얼굴이 따라간다. 넓은 논배미의 나락이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어느새 들판엔 무심한 바람만이 휑하니 분다.


이 편리한 문명의 이기가 보편화되기까지는 그리 오래된 얘기가 아니다. 젊은이가 사라진 농촌에 이토록 고마운 기계가 없었다면 그 많은 논농사는 누가 지을까?  아마도 너른 들판엔 잡초만이 무성하게 넘실대고 있겠지.

문득, 그 옛날 막걸리 한 잔에 새참을 들며 구슬땀으로 벼베기하던 고향땅 어르신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그 추억 앗아간 저 시끄럽고 험악하기 그지없는 기계가 괜스레 얄미워진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이곳을 지키고 계신 어르신들 말씀으로는 앞으로 일주일만 지나면 거의 추수가 끝이 난다고 한다.

오늘도 너른 들판에는 트랙터와 콤바인이 종일 쉬지 않고 돌아다닌다. 눈에 뜨일 만큼  빠른 속도로 빈 들판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머지않아 김제평야 황금 들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썰렁한 바람만 뒹굴고 있을 것이다. 농부들의 고단했던 한 해가 이렇게 저물어가고 있다.


제법 날이 쌀쌀해졌다. 오늘도 가을은 성큼성큼 잰 발걸음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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