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고향을 떠나, 풀 한 포기 심기 힘든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위에 서있는 서울이라는 각박한 도시에서 살았다. 그래서 농촌 출신이기는 하나 농작물에 대하여는 별다른 지식이 없는 내가 퇴직 이후 손해평가사 시험 준비를 하는데 애를 많이 먹었다.
자격증 취득 이후, 두 해 동안 농작물 손해평가를 위해 전국에 있는 과수원과 논·밭을 돌아다니면서, 내가 살아온 삶과 전혀 다른 삶의 현장을 만났다. 늘 풍요롭고 낭만적으로만 보이던 그곳에서 농부들이 뿌린 굵은 눈물과 땀방울을 보았고, 억척스레 고향을 지킬 수밖에 없었던 그들만의 진한 삶의 애환을 보았다. 참으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경험이었다.
손해평가사 제도가 도입된 지도 어언 10여 년이 지났다.
이제는 어느 정도 제도가 정립되어가고 있어 농민들의 권익 보호와 손해보전을 위해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아주 긍정적이다. 그러나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어 보인다. 날로 고령화되어 가는 농촌으로 젊은이들이 돌아오고, 고향을 지키던 사람들이 더 이상 그 땅을 떠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정책적 지원이 절실해 보인다. 그중 손해평가 제도 정착을 위한 다각적인 지원도 큰 몫을 차지할 것이다.
올해도 우리 손해평가사 동료들은 농작물 피해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다니며 그들과 함께 울고 웃고 할 것이다. 나 또한 그 일원이 되어 '또 다른 항해'를 계속해 나갈 것이다.
따스하고 훈훈한 가슴을 가진 분들과 함께하는 나의 항해가 거듭될수록 내 삶은 더욱 풍요로워지고, 가슴 더욱 따뜻해질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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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늙은 올빼미의 고백"에 이어 '어느 손해평가사의 하루'를 격려의 마음으로 함께해 주신 작가님과 독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또 다른 글로 곧 찾아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