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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환 Mar 17. 2024

추억여행을 준비하며

20년의 긴 기다림


내가 우리 가족과 함께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 있는 콜로라도 주립대학에 유학을 떠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2004년 7월 말이었다.

당시 40대 중반, 늦은 나이였던 나는 직장에서 주어지는 몇 안 되는 유학 기회를 잡기 위해 일과 어학공부를 병행하며 힘든 날들을 무던히 감내해야 만 했다. 아이들에게 더 큰 세상을 보여주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통하였을까?  2년 여의 노력 끝에 나는 어렵사리 유학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그때 아들이 14살, 딸은 8살이었다. 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아들은 학교에서 배운 기초 영문법 정도를 익힌 정도였고,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딸아이는 알파벳 대문자와 소문자조차도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던 때였다. 그런 아이들을 데리고 시작한 미국생활은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다. 학교에 가면 말이 통하지 않으니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고 답답했겠는가. 딸아이는 아침이 되면 학교 가기 싫다고 투정을 부리곤 했다. 어느 날은 딸아이가 학교에 다녀오더니, 힘들다며 펑펑 울기까지 했다. 그래도 아들은 나이에 걸맞게 무던히 참아 내는 모습이 역력했으나, 힘든 것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우리 부부는 적지 않은 가슴앓이를 했다.  


그러나 세월이 약이었다. 아이들이 차츰 학교생활에 적응을 하고 친구가 생기면서부터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친구들을 집에 데려와서 함께 밤을 새우기도 했다. 6개월이 지나고 1년이 지날 때쯤에는, 아빠보다 영어가 유창해지고 발음도 제법 원어민을 닮아가고 있었다. 아빠의 서툰 한국식 발음을 지적하고 교정까지 해주기에 이를 정도로 완전히 적응한 아이들은 돌아갈 날이 점점 가까워지자, 진심으로 한국에 가기를 싫어했다. 우리 가족이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이  아이들을 두고 간다면 당신께서 맡아주겠다고 까지 제안을 했지만, 아직은 너무 어린아이들을 이국 만리에 두고 온다는 것은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아이들이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우리 부부는 많은 날을 두고 진지하게 고민을 했다. 그러나 자식은 부모의 품 안에서 키워야 한다는 나의 신념이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오게 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그 결정이 옳은 판단이었는지는 아직도 확신이 없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일 것이다.


2년간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뒤, 나는 또다시 일에 매몰되어 바쁘게 살았다. 어쩌면 치열하게 살았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한국에 돌아가면 미국에서 처럼 여행도 자주 하고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갖겠다던 아이들과의 약속은 거의 지키지 못한 채 살았다. 아이들도 한국에서의 치열한 입시제도에 묻혀 여유 없는 학창생활을 보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내가 은퇴를 한지도 어언 5년이 흘렀다. 그동안 아이들도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며 어엿한 사회인으로 성장했다. 바쁘게 살아오면서도 우리 가족은 가끔씩 미국생활의 추억을 얘기하곤 했다. 그러면서 늦기 전에 미국  추억여행을 가자는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특히 아이들이 직장을 잡으면서부터는 보다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곤 했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우리 가족의 여행계획은 자연스럽게 수면 아래로 잠기고 말았다.


또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코로나가 잠재워진 작년 12월 초쯤, 딸아이가 대뜸 미국 얘기를 다시 꺼냈다. 더 이상 미뤄지고 자기네들이 결혼을 하게 되면 꿈이 현실화되기는 더욱 어려울 수 있으니, 가급적 빨리 일정을 잡자고 했다. 우리 모두는 흔쾌히 딸아이의 제안에 동의했다. 우리는 즉시 달력을 펴놓고 서로 가능한 일정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3.1절 연휴가 낀 3월 첫 주로 정했다. 직장에 다니는 아이들이 5일만 휴가를 내면 10일간의 여행 일정이 가능했다. 그렇게 우리의 추억여행 일정은 2024년 3월 1일~10일로 확정되었다. 아들과 딸이 신이 나서 그날 밤 즉시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비행기 예약을 마치고 나니 우리의 추억여행은 더 이상 미를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꿈에도 그리던 우리 가족의 미국 추억 여행이 20년 만에  눈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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