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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환 Mar 22. 2024

잠 못 이루는 덴버의 첫날밤

서서히 주차장을 빠져나간 차가 덴버 시내를 향한다.

이미 밤 아홉 시를 넘겼지만,  덴버시내로 가는 길은 수많은 차량 행렬이 길게 늘어져 있다. 조금은 위축되어 조심스레 달리는 내 차 옆으로 차량들이 빠르게 스친다. 차량들의 불빛이 지천으로 깔린 I-70번 도로와 I-25번 도로를 갈아타며 덴버시내를 우회해서 숙소로 향했다. 잠들지 않은 불야성의 덴버시내가 가까이 눈에 들어온다.

덴버의 첫날밤 숙소는 우리 가족이 살았던 곳에 위치한 S 호텔로 잡았다. 덴버시내에 숙소를 잡지 않고, 이곳을 첫날 숙소로 정한 것은 아마도 그리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덴버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보고 싶은 곳이 우리가 살던 곳이라 했다. S 호텔은 주변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어서 멀리서도 곧바로 우리가 사는 곳을 알려주는 친근한 이정표였다. 집에 전화가 개설되지 않았던 초창기에는 한국의 부모님께  전화를 하기 위해 여러 번을 들렀었다. 당시 로비에는 기념품 샵이 있었는데, 한국 분이 운영을 하고 있었다. 나이가 지긋하신 그분은 꼬맹이였던 딸아이를 무척 예뻐해 주셨다. 어느 날은 딸아이에게 자그마한 선물을 주시며 자주 놀러 오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기도 했다. 그러니 아이들이 이 호텔을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으리라.


첫 숙소인 s호털과 우리가 살던 마을 전경



차는 어느새 US-6번 도로로 접어들고 있다. 이 도로에 들어서니 아이들에게도 익숙한 지명들이 표지판에 나타난다. Kipling, Wadsworth, Union  St. 등 익숙한 길이 눈에 들어오자, 아들과 딸이 큰 소리로 환호를 한다. 이 길은 아이들이 매일같이 통학을 위해 다니던 길이다. 밤이지만 희미하게 스치는 풍경이 낯설지 않아서 좋다. 정말 꼭 한 번은 와보고 싶던 길을 우리가 함께 달리고 있다.


숙소에 도착했다. 아이들이 체크인을 하는 동안 로비를 둘러봤다. 옛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샵을 찾았으나, 샵은 모두 없어지고 로비를 넓게 확장해서 휴게공간이 되어 있었다. 그 옛날 이곳에서 기념품 샵을 운영하시던 그분은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실까?  자꾸만 샵이 있던 곳으로 눈이 간다.


체크인을 마치고 10층 룸에 들어가자마자, 우리 가족 모두는 커튼을 열고 우리가 살던 아파트 쪽을 내다보았다. 어둠에 짙게 눌린 단지는 희미한 불빛 몇 개만 명멸하고 있다. 어떻게 변했을까? 내일 아침까지 기다리기엔 너무도 길게만 느껴진다.


샤워를 하고 자리에 누웠으나 잠이 오질 않는다. 아직도 이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되질 않는다. 가족들 모두 똑같은 마음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


잠 못 이루는 덴버의 첫날밤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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