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기환 Mar 26. 2024

우리는 유타로 간다


우리 살던 아파트를 둘러보며 아득했던 그리움을 풀어낸 우리는 곧바로 콜로라도를 벗어나기로 했다. 당초 우리의 계획은 덴버를 중심으로 콜로라도에서만 이번 여행 일정을 소화하려 했다. 사실, 콜로라도 주요 명소만 둘러보더라도 열흘간의 일정으로 빡빡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다시 오기 어려운 기회인 만큼, 다소 힘들더라도 인근 주의 추억들도 몇 군데 들춰보기로 했다. 유타, 네바다, 애리조나주를 한 바퀴 돌아본 후 다시 덴버로 돌아오려면 최소한 닷새 정도는 걸릴 것이다. 그 후 마지막 2~3일은 아이들 학교, 다니던 교회. 쇼핑몰 등 덴버의 그리운 곳을 주로 돌아보는 걸로 일정을 변경했다.


I - 70번 도로를 따라 달린다.

잊고 살았던 익숙한 지명과 풍광들이 스칠 때마다 아득한 기억들이 함께 스친다. 이 도로는 로키산맥의 주요 스키리조트와 연결되는 도로여서, 겨울철 주말이면 넓은 도로가 차들로 꽉 막힐 정도로 붐비기 일쑤였다. 1시간 여를 달려  아이젠하워 터널을 지나니 키스톤, 브리큰리지, 베일 등  세계의 스키 마니아들이 열광하는 스키리조트 표지판들이 연이어 나타난다. 도로에 인접해 있는 스키장도 보인다. 아내와 아이들이 이구동성으로 스키 타고 싶다고 난리다. 왜 그러지 않겠는가! 당장 도로를 빠져나가 스키장으로 가고 싶은 마음 굴뚝같다. 그러나 우리의 이번 일정에는 스키 타는 계획은 들어있지 않다. 스키를 즐기려면 하루를 온전히 빼야 하는데 그럴만한 시간의 여유가 없다. 아쉽지만 계획을 짤 때 이미 포기했었다.

로키산맥과 함께 달리는 I-70 도로


덴버는 'SKI & GOLF CITY '라는 별칭이 있을 만큼 많은 스키리조트가 있어 겨울철이면 내국인은 물론, 각국의 스키 마니아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심지어 알프스의 고장 스위스에서 온 스키어들을 만난 적도 있었다. 그들은 알프스보다 로키가 훨씬 규모도 크고 매력이 있어 이곳을 자주 찾는다고 했다.

스키리조트로 가는 길


로키의 스키리조트는 보통 10월 말에 개장하여 이듬해 4월 말 5월 초에 문을 닫기 때문에 연중 6개월은 스키를 즐길 수 있다. 리프트를 두어 번 갈아타며 올라간 후  밀가루처럼 폭신하고 부드러운 눈길을 스치며 내리 달리는 그 기분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할 정도로 스릴 있고 멋진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랜드정크션 가는 길


길게 뻗은 도로는 광활한 대지를 가르며 눈 덮인 로키산맥을 따라 달린다.

오늘이 토요일이라서 스키 장비를 지붕에 싣고 달리는 차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화장실에 들르기 위해 중간에 한번 쉬었을 뿐, 쉬지 않고 달려 그랜드정크션에 도착했다. 장엄한 산과 계곡을 휘감고 달리는 이곳을 지나면 곧 유타주에 들어선다. 덴버에서 콜로라도주를 벗어나는데만 거의 5시간이 걸렸다.


광야를 가로지르는 유타의 도로


유타주에 들어섰다. 줄기차게 이어 달리던 산맥은 사라지고, 여기서부터는 광활한 대지가 끝없이 펼쳐진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건 오로지 메마르고 척박한 땅뿐이다.

이따금씩 차 한 대씩 지나갈 뿐, 사람 사는 흔적을 찾기 힘든 사막 같은 적막과 고요가 차창으로 스친다. 콜로라도와는 확연히 다른 맛이다. 산길을 따라 굴곡이 많은 콜로라도에 비하면, 이곳의 도로는 자로 그어놓은 듯 일직선이다. 오르내리막도 거의 없다. 그저 곧게 뻗은 도로의 끝이 하늘과 맞닿아 있을  뿐이다. 이렇듯 광활한 대지를 달려본 지가 얼마만인가!  대자연 속에 하나의 점이 되어 달리고 있는 나를 본다. 황홀하다.



아이들도 이제는 자연을 즐길 수 있는 나이가 되었나 보다. 어릴 적 지루하게만 여기던 이곳 풍광을 연신 감탄사를 날리며 즐기고 있다. 이 순간 이 느낌을 우리 네 가족이 함께 다시 맛볼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행복하다.


여행이란 '여기가 행복이다'를 줄인 말이라고, 그 누군가 했던 말이 절실하게 다가온다.


그래!  여기, 우리가 함께하는 이곳이 행복이다!!

이전 05화 우리 살던 곳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