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재작년까지 죽기 싫다며 징징거리던 내가 올 초에 자의적 죽음을 생각했다. 모순됐다. 아직 충분히 살지 못한 삶에 한탄을 표하며 살겠다고 3차 병원의 온갖 과를 돌아다니던 내가 올초엔 죽고 싶었다니.
오랜만에 온 3차 병원은 모든 게 다 똑같았다. 흐르는 공기도 똑같고, 냄새도 똑같고, 사람들 표정도 똑같다. 이곳만 시간이 멈췄다. 3차 병원에 처음 온 날을 기억한다. 미로 같은 병원에 익숙하지 않은 용어들. 서울 인구를 다 보는 것 같이 사람은 많고, 환자도 많았다. 환자복을 입고 있지 않아도 손에 들린 분홍색종이로 저 사람이 환자임을 짐작할 수 있다. 진료 예약 시간보다 미리 와 앉아 있어도 73분 지연된 진료와 쉼 없이 들어가는 환자들.
어리바리하게 진료를 받고 나오니 검진을 예약하랜다. 하얀 종이에 쓰여있는 숫자대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면서 예약을 마쳤는데 길을 잃었다. 길을 한참 헤매다가 몸집만 한 기계를 붙이고 지나가는 환자를 보았다.
생과 사, 여기는 생과 사를 오가는 곳이었다.
3차 병원에 다녀온 날, 누군가 내게 말했다.
- 누구랑 같이 가지. 혼자 무서웠겠다.
그 말에 ‘굳이?’라 답하며 시린 코끝을 애써 모른 척했다. 보호자 있는 환자는 아기 같다. 짐은 다 보호자에게 넘기고, 보호자만 바라본다. 그 모습을 보며 미소 지었다가 내 손에 들린 접수증을 보면서 ‘됐어, 혼자 와도 돼.’라고 생각한다.
3차 병원의 차분한 소란스러움에 기가 죽는다. 여기가 날 살릴 곳이란 걸 알면서도 두렵고, 무섭다. 1년 반정도를 매달 오갔다. 그러면서 미로 같던 길이 너무나 익숙해지고, 지름길도 알게 되었다.
외래 건물에는 지하부터 지상까지 이어지는 미디어 패널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 미디어 패널을 보면서 ‘돈도 많다.’ 생각했다. 저것보다 작은 패널 금액을 알고 있어서 그랬다.
병원을 몇 번 더 오가니 미디어 패널 앞에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무리 변화를 주어도 침울한 분위기를 지울 수 없는 이곳을 나가지 못하는 환자들은 계속 움직이는 패널을 보다, 쉬다 하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외출과 면회가 어려운 이곳에서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내가 입원했을 때 화장실 창문으로 보이는 등교하는 학생들을 보는 게 낙이었으면서. 남의 낙은 돈으로만 봤다. 그저 숫자밖에 생각하지 못한 내가 오만했다. 나는 아직도 알아야 할 것이 많구나.
외래 진료를 마치고 매번 했던 대로 잠바주스에 와서 스트로베리 와일드를 시켰다. 무거운 서류 가방에 정장을 입은 사람이 옆에 앉았다. 보험 설계사구나. 보험 하면 내가 앉은 이 자리에서 누군가 나누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보험은 어디 있고, 입원비는 어디 돈을 깨고, 빌리고 하던이의 말이 생각난다. 허옇고 낡은 환자복을 입고 제 몸만 챙기기에도 모자를 시간에 돈 생각 먼저 해야 하는 이가 그려진다.
소화기 환자인 내가 산도가 있는 과일 스무디를 시키면서 눈 건강에 좋은 블루베리를, 위에 좋은 단백질을, 연골에 좋은 콜라겐을 넣어 마시는 것도 모순 됐다. 모든 게 다 모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