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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준생 Dec 24. 2024

#02 아는 만큼 재미있다.

보글보글 물 끓기 3분 전


"ㅇㅇ아 크리스마스 때 올 거지?"

"그럼, 가야지, 24일 퇴근하고 갈듯"

"이번에 대만 소다제당이라고 차 전문점 있는데, 거기 들렸다가 너 줄라고 차 사놨어"

"오, 진짜? 무슨 차?"

"잘 모르겠는데, 우롱차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그... 그래, 아 나도 마침 최근에 차실 다녀와서 사온 차가 좀 있어!"

"아냐 그냥 와, 우리 집에 차 많아"


나에겐 거의 20년 가까이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내는 친구들이 있다.

재미있는 점은 나를 포함해 모두들 술을 즐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몇몇은 커피 또한 마시지 않는다. (단순히 쓰다는 이유로...)

이런 그들을 위해 나는 작년부터 모일 때마다 틈틈이 차를 우려주기 시작했고,

그중 특히 한 친구가 크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 친구는 일본과 대만을 오가는 무역업을 하고 있는 친구이다.

그만큼 우리나라 못지않게 차로 일가견이 있는 두 나라를 오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차에 대해 어느 정도 관심을 갖고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이 친구의 미스터리 한 부분이 있다면, 10년 넘게 두 나라를 오가면서도,

두나라의 언어를 전혀 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한자 문화권인 두나라를 다니면서 한자도 전혀 모르며,

그렇다고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그렇게 수많은 물건들을 사고 또 팔고 있는지 

너무나도 신기할 따름이다.


일본어 정도는 배울만도 할 텐데, 친구의 일본어 실력은 고등학교 제2외국어를

일본어로 선택해 배운 것이 고작인 나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잎차를 주로 마신다면, 아무래도 이래저래 바쁜 친구이다 보니,

친구는 좀 더 간편화된 티백을 주로 마신다.

내가 잎차를 우려 주면, 친구는 나의 다기와 방법적인 부분에 큰 흥미를 보이며,

본인이 다녀본 각국의 전문점이나 찻 집들의 이국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에게 있어 너무 흥미롭고 즐거운 이야기 들이다.


하지만, 아직 차에 대해 모르는 게 많은 나에게 있어 친구의 질문에 답해주기 어려울 때가 있고,

친구 역시 언어를 모르다 보니, 찻집이나 차 전문점의 분위기나 풍경 정도는 정확하게 묘사해 주지만,

맛을 제외하면 모든 설명이 1차원적이고 두리뭉실힌 이야기들 뿐이라는 것이 우리의 대화의 한계이다.

되려 한문을 떠듬떠듬 읽는 내가 친구가 사 온 차가 뭔지 맞출 때가 있을 지경이다.

상황이 지경이다 보니, 당연히 친구의 차를 고르는 기준은 패키지 디자인이 예쁜 제품이다.

이러다가 어느 날이고는 예쁜 독극물이라도 사 오는 게 아닌가 걱정스러울 때도 있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즐거움이다.

하지만 우리의 대화는 늘 무식함이라는 큰 벽에 가로막힌다.

아마도 앞으로 우리가 좀 더 지식을 쌓고 경험을 한다면, 

우리의 대화는 지금보다 더욱 흥미로워지리라 생각을 하는데,

이 친구는 여전히 외국어를 배울 마음이 전혀 없는 것 같다.


"이 친구야, 외국어 좀 공부해라, 나도 차에 대해 더 알아보고 공부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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