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글보글 물 끓기 3분 전
나는 내 방에서 잠이 들 때, 창문의 블라인드와 암막 커튼까지 쳐놓고,
최대한 모든 외부의 빛을 차단하고 나서야 잠을 청한다.
딱히 예민해서 조금이라도 빛이 있으면 잠을 못 잔다 거나 그런 건 아니다.
그저 일종의 나의 습관 같은 행위이다. 이 습관이 어디서부터 기인했는지
스스로 잘 알고 있지만, 딱히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니
당장은 그만둘 생각은 없다. 혹시 먼 훗날 이 습관의 원인이 고쳐지거나,
혹은 누군가에게 피해가 된다면 고쳐야겠지만 말이다.
이런 연유로 아침에 눈을 뜬 나는 외부 상황을 전혀 알 수 없다.
그저 내게 주어지는 것은 청각적인 부분과 피부로 느껴지는 기온 정도 일 것이다.
나는 이런 감각이 좋다. 시각적인 정보가 최대한 제한/배제되지만,
익숙한 환경이라 전혀 두렵거나 무섭지 않은 이 느낌.
하지만 그럼에도 눈 오는 날만큼은 제법 잘 알아맞히는 편이다.
'유독 다른 날 아침 보다 고요하고, 기온은 포근하다고 할까?'
뭐 실제, 눈이 오면 기온이 포근한 것도 있으며, 차가 서행하거나,
많지 않은 것이 고요함의 원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린애 같지만, 나는 여전히 눈 오는 날을 아주 좋아한다.
그렇게 지난 주말 아침, 서울에는 제법 많은 눈이 내렸다.
그날 아침 나는 커튼을 젖히고 10분쯤 멍하게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루 종일 내렸으면 좋겠네...'
그런 생각들을 하던 중, 이렇게 멍하게 있지 말고,
차라도 마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 내리는 풍경을 구경하며 방에서 마시는 따뜻한 차 한잔,
상상만 해도 상당히 운치 있고 낭만적인 기분을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또한 평소, 평일에는 아침에 눈이 내려도, 출근 준비로 분주하기에,
차는 고사하고 오늘처럼 이렇게 멍하니, 구경할 여유도 없다.
즉, 이런 기회는 흔치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게 생각하고는 곧장 주방으로 내려갔다.
마침 어머니께서는 커피를 끓이고 계셨고,
나는 그렇게 조용히 식탁에 앉았다.
"저도 커피 주세요."
그렇게 여유를 만끽하려는 찬라,
하지만 어머니는 나의 여유를 허락하시지 않으셨다.
"일찍 일어났네, 너 거기 앉아 있지 말고, 가서 집 앞에 눈 좀 쓸어!"
"창고에 빗자루랑 염화칼슘도 있으니까, 좀 뿌리고!"
그렇게 말씀하시고서는 내게 창고 열쇠를 쥐어 주셨다.
'그냥 방에서 조용히 창밖이나 구경하고 있을걸...'
그렇게 나의 눈 구경과 차 한잔의 계획은 아쉽게도 활기찬 제설 작업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창밖이 아닌 문밖의 눈도 좋다.
이렇게 눈 내리는 걸 좋아하는 걸 보면, 어쩌면 나는 전생에 개였을지도 모르겠다.
"멍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