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글보글 물 끓기 3분 전
나의 본명을 얘기할 수 없지만, (얘기해도 상관없지 않나?)
나의 이름에는 본래 '홍'자가 들어갔었다.
나를 유독 아끼셨던 나의 조모께서 무슨 사내 이름에 '홍'자를 넣냐며,
조부와 다투셨고, 그리하여 '홍'자가 빠진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몇 년 후 유명 사극인 '허준'에서 나의 예전이름인 '홍춘이~'라는
대사가 줄기차게 등장하는 바람에 이름을 바꾸지 않았었더라면,
적잖게 놀림을 받았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이렇듯 '홍'이라는 글씨는 내게는 조금 특별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사실 오늘 하려는 얘기는 내 이름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처음 차에 입문을 하면서, 친구의 도움으로 질 좋은 여러 종류의
차들로 차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고, 그 여러 차 중에 오늘 얘기하고자 하는
홍차도 있었다. 내 이름의 '홍'이 나의 처음이자 시작이었던 것처럼,
'홍'차 역시 나의 차생활에 있어 처음이자 시작을 의미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렇게 차에 입문하고, 차를 즐기기 시작하며 제법 여러 시간이 지났다.
그간 다양한 차들을 즐기며 나의 기호와 취향을 찾아가며 차에 여러 풍미를
배우고 느끼는 사이, 공교롭게도 유독 홍차만은 추가로 구매하거나
다른 종류의 홍차를 즐기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왜였을까?
홍차는 아마도 녹차와 더불어 가장 대중적인 차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만큼 홍차에 대한 여러 상품들을 주위에서 쉽게도 찾아볼 수 있다.
어쩌면 바로 이렇게 언제 어디서든 마음만 먹으면 접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되려 여태껏 접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
"다음에 기회가 되면...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구할 수 있는데..."
그렇게 시간이 흘러 여러 차들을 즐기는 동안, 홍차를 다시 맛볼 기회도
홍차를 마셔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날도 쉽게 찾아오지 않던 중,
지난 신년 새해, 친구는 내게 티워머를 새해 선물로 주며, 함께 홍차 몇 종류도
선물해 주었다. 그렇게 내게 시작과도 같던 '홍'차가 돌아왔다.
나는 최근에 줄곧 마시던 차는 '생차'였다.
제법 오래 마셔 왔음에도, 여전히 '생차'의 맛과 향은 내게 복잡 미묘한 존재로,
백분 이해하지 못하는 탓에 나도 모르게 과제를 하듯 또 탐구를 하듯
차를 즐기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우연찮게 돌아온 '홍'차는 무척이나 달달 하고 향긋했고 맛있었다.
내게 따듯하고 여유로운 느낌을 선사해 주었다.
물론 맛과 향을 찾아가고 탐구하고 고민하는 일련의 과정 역시 굉장히
흥미롭고 즐거운 일이다. 이 또한 차를 즐기는 방법 중 하나였겠지만,
쉼, 여유 같은 차를 넘어 취미가 주는 근원적인 재미를
놓치고 있었던 것 은 아닌가 조심스럽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쩌면, 때로는 다시 돌아온 홍차처럼
좀 더 단순하게 생각하고, 여유롭게 즐길 줄도 알아야겠다.
단것은 단것이고, 쓴 것은 쓴 것이다.
달고 쓴맛에 특별한 이유를 찾고,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애당초 어쩌면 의미나 이유 따위는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나의 뇌내 망상 일뿐.
그러니 조금 더 단순하게 그리고 좀 더 투명하게 생각하고 즐기자.
이렇게 생각하는 게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그랬던 것처럼, 생각 없이, 단순하게 호기심 가득했던 그때처럼,
다시 시작하자 '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