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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 도심속 탐구생활

보글보글 물 끓기 3분 전

by 차준생


어느 목요일 아침, 조금 늦은 출근을 했던 날이다.

그날 사무실로 들어섰을 때, 사무실은 상당히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심지어 비명소리까지 섞여 들려왔다. 그렇게 시끌벅적한

문제의 현장으로 다가가보니, 다들 사무실 바닥에 시커먼 무언가를

피해 이리저리 도망 다니고 있었다.


"실장님 거미요!"

"그냥 밟아..."

"실장님이 좀 해봐요!"


녀석은 마치 가제처럼 집게발을 가지고 있었고,

특별한 무늬가 없는 시크한 무광의 블랙 바디,

크기는 손가락 세 마디 정도 될 만큼 큼직한 것이

나는 녀석이 예사롭지 않다는 사실을 첫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한마디로 하자면 내 눈에 녀석은 제법 멋져 보였다.


"이거 농발거미잖아!"


내가 알기로, 대한민국에서 특히나 서울에서 볼 수 있는 큰 사이즈의 거미는

대부분 '무당거미'이다. 현란한 무늬가 참으로 징그럽기 짝이 없는 녀석으로,

여름철이면 이곳저곳 거미집을 지어놓고 그 거대하고 현란한 무늬를 뽐내는 것이

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종이다. (애당초 사실 곤충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거미는 엄밀히 따지면 곤충은 아니고 절지류이긴 하지만, 절지류도 싫어한다.)


하지만 이 녀석은 추측건대 아마도 농발거미로 생각된다.

국내 이곳저곳에 서식한다고는 들었으나, 서울에서는 좀 처럼 보기 쉬운 녀석은

아닌 걸로 안다. 나도 실제로 본 것은 몇 차례 안되며, 서울보다는

좀 더 남쪽 따뜻한 지방에 많이 서식한다고 알고 있는 종인데,

아마도 어딘가 택배 상자에 섞여 들어 이곳 서울의 도심까지 오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나는 어제 다 마시고 내 책상 위에 방치되어 있던 일회용 플라스틱 커피컵에

휴지 몇 장을 생수에 적셔 깔았다. 그리고 장갑을 끼고 조용히 거미에게 다가가

녀석을 움켜 쥐어잡았다. 그리고는 녀석을 커피컵 안으로 털어놓고는

뚜껑을 재빠르게 닫았다. 물론 녀석은 제법 제 빨랐지만, 나의 영리한 퇴로 차단과

신속한 손놀림을 당해내지는 못했다.

다른 사무실 식구들은 이런 나의 모습을 의아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오!!, 농발거미! 넌 내 거야!"

"으... 그거 사무실에서 키우실 건 아니죠?"

"가라! 농발거미! 몸통 박치기!"

"애효...얼른 버려요!"

"응, 적당히 관찰하다가 풀어 줄 거야."


내 대답을 들은 사무실 식구들은 안도하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일전에 참새를 비롯해, 이것저것을 자주 주워와

사무실에 보살피던 내가, 또 키운다고 유난을 떨까 봐 걱정되었던 모양이다.

(물론 나의 이런 행동을 사무실식구들 모두 싫어한다.)

참고로 참새는 장마철에 비를 쫄딱 맞아 제대로 날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모습이 안타까워 며칠 보살폈던 것 뿐인데, 며칠간 빨리 버리라고

하루가 멀다 하고 닦달하던 사무실 식구들의 모습이 기억에 남아있다.

(사람들 참으로 야박하다.)


그렇게 나는 퇴근길에 적당한 곳에 방생해 주기로 하고는

커피컵을 들고 내 책상 한편에 올려 두었다.

이름이라도 지어줄까 생각하다가 그만두었다.

그렇게 그날 하루 종일 커피컵을 이리저리 관찰하고,

두드리며 하루를 보냈다. 당연하게도 내 자리를 찾아오는 사람마다

빨리 버리라고 한 마디씩 했다.

정말이지 야박하고 낭만도 없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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