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글보글 물 끓기 3분 전
요즘 같은 무더운 여름철이면 무더운 만큼 차가 잘 식지 않는다.
장점이라면 장점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가뜩이나 뜨거운 것을 잘 못 마시며, 잘 못 만지는 나로써는
뜨거운 차를 마시는 일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짐작해 보건대, 어쩌면 '삼국지'의 관우가 화웅과의 전투를 앞에 두고
"술이 식기 전에 돌아오겠소!"라고 하며 승리를 선언하며,
호언장담 했던 '사수관 전투'는 무더운 여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만큼 술이 천천히 식어 여유가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관운장은 상당히 과학적인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뭐든 식기 전에는 일단 뜨거워야 된다.
뜨거워야 식는다. 처음부터 미지근하다면 식을 일도 없다.
하지만 몇 도 정도면 뜨거운 걸까? 팔팔 끓는 100도씨 정도면 뜨거운 걸까?
물론 100도씨 정도면 아마 여간해선 반론의 여지가 없을 만큼 누구나 뜨겁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물이 아닌 감정이나 상황이 식었다 혹은 뜨겁다고 얘기할 때,
그때는? 어느 정도면 뜨거운 거고, 어느 정도면 식은 걸까?
나는 세상에 모든 일들은 대체적으로 미지근하다고 생각한다.
적당히 살짝 따듯해도 미지근하다고 하고,
적당히 살짝 시원해도 미지근하다고 한다.
참으로 주관적이고 광범위한 말이다.
어쩌면 미지근의 범위는 가히 무한대에 가까울 지도 모르겠다.
영원히 뜨거움과 차가움에 도달하지 못하는 그 사이 어딘가...
그럼 진짜 감정이나 상황 따위의 뜨거움이나 차가움이라는 것이 존재는 하는 걸까?
아마 대다수, 아니 거의 모든 감정과 상황들은 그저 미지근한 어딘가를 표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뜨겁거나 차갑거나, '모'이 거나 '도'이 거나, 흑 이거나 백 이거나.. 등등
세상 모든 일 들이 이렇게 명명백백하게 나눌 수 있지 않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야 얼마나 편할까 만은,
(물론 이분법적 사고야 말로 가장 위험한 발상이며, 멀리해야 되는 생각이다.)
너무나도 아쉽게도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흑과 백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회색들이 존재하고
모 와 도 사이에는 게 걸 윷 이 존재하며,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 사이에는 무한의 미지근 함이 존재한다.
어쩌면, 정말로 세상의 모든 일은 미지근한 게 아닐까?
그저 뜨거움에 가까운 미지근,
차가움에 가까운 미지근만 존재할 뿐일지도...
그렇게 어느 무더운 여름밤 뜨거운 찻잔이
부디 빨리 식기를 기다리며 이런 잡생각에 잠겨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