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글보글 물 끓기 3분 전
'나는 비오늘날을 제법 좋아한다.'
분명 그날, 그 주말은 비가 예고되어 있었다.
최근 이래저래 일과 약속이 많아, 미뤄뒀던 일들이 쌓여있지만,
비가 온다는 핑계로 일정들을 취소하며, 다시 한번 미루기로 했다.
그렇게 모든 일들을 미뤄두고 방안에 틀어 박혀,
이불속에서 빗소리나 들으며, 그렇게 그날 게으른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모든 약속과 일정들을 마다 하며 거절했던,
그날 이른 아침, 커튼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너무나도 따가운 햇살에 나는 잠을 깰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창문을 열어 하늘을 보니, 비는커녕 구름 한 점 없는 쾌청한 하늘,
그 하늘 안에 가로지르는 전신주에 두세 마리의 이름 모를 새들이 모여 앉아 있다.
그들은 연신 푸드덕 대며, 아침부터 내 차에 큰 일을 치르고 있었다.
'최악이다.'
조금 있다 라도, 비가 온다면 씻겨 나갈 텐데,
내 속도 모르는 하늘은 전혀 비가 올 생각이 없어 보이는 파란색이다.
지금이라도 나가 허공에 팔을 휘저으며 내쫓을 까도 생각해 봤지만,
그런다고 이제 와서 내 차가 깨끗해지는 것도 아닌지라, 그마저도 관두기로 했다.
그저 제발 일기 예보대로 비가 와 주길 바라며,
커튼을 단디 다시 여미고는 누워 잠을 청해 볼까 했지만,
눈뜬 김에 오랜만에 오전 맑은 정신에 차를 즐길까 하여 준비하기 시작했다.
아래층 주방에서 다기를 준비하고 정수기에 물을 받아 내방으로 올라왔다.
다기들을 정돈하고는 차의 량을 조절하고 물이 끓기 기다릴 때쯤.
이마에서 '주르륵' 하고 땀방울이 떨어진다.
나는 서둘러 에어컨 리모컨을 확인해 보지만, 분명 에어컨은 잘 돌아가고 있다.
'희망온도 22도'
그렇게 준비한 차를 즐기는 동안에 나의 희망사항이었던 '22도'
그 '22도'로는 결코 내려가지 않았다. 애당초 1도도 안 내려갔다.
아마도 오늘 오후는 무척이나 더울 것 같다.
어디 시원한 카페나 하다못해 PC방에라도 나가 놀아야 될 것 같다.
그렇게 빗소리로 시원하게 시작했어야 할 주말의 아침.
그 비 오는 주말 아침 또한 그저 나의 이뤄지지 않을 '희망 사항'이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