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글보글 물 끓기 3분 전
두 개의 다리가 있어
머리는 몇 개일까
한 번은 하늘 아래로 떨어지려 했어
하지만 그게 잘 안 됐어...
<남극혹등고래 - 벌레中>
내가 좋아하는 밴드의 노랫말이다.
아마 내 기억이 맞다면, 이 녀석을 처음 본 것은 작년 여름부터였을 것이다.
'머리는 어디고 꼬리는 어디지?',
'다리는 대체 몇 개인거지?'
'두 마리가 붙어 있는 건가?, 세 마리가 붙은 것도 있나?'
이런 궁금증을 갖고 한참 바라보다, 녀석이 내 얼굴로 저돌적으로 날아들어
식겁하고 기겁하여 방방 뛰며, 온몸을 털어댔던 (나쁜) 기억이 있다.
녀석의 이름은 '붉은등우단털파리'라고 한다고 한다.
이렇게 정식 명칭으로는 조금 생소할 수 있지만,
이 '붉은등우단털파리'라는 이름의 녀석이 바로
흔히들 말하는 통칭 '러브버그'이다.
요즘 같은 여름철에 대량 발생하여,
여러모로 민폐를 끼치는 녀석의 별명 치고는 참으로 예쁜 별명이다.
다들 아시다시피 두 마리가 사이좋게
마치 2인 삼각 경기라도 하는 듯 항상 붙어 다닌다고 하여 붙여진 별명, '러브 버그'
다양한 매스컴에서는 해충이 아닌 익충이라는 내용의 얘기들을 자주 하지만,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한두 마리도 아니고, 수십 마리거 짝을 지어 다니는 모습은
가히 혐오스럽기 그지없다.
또한 녀석들의 수명은 2~3일로
이렇게 대량으로 발생한 녀석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생을 달리하며,
녀석들이 남기고 간 사체를 치우는 일도 참으로 곤욕스럽기 그지없다.
특히 녀석들의 가장 기분 나쁜 부분은, 겁이 없는 건지 둔한 건지,
사람몸은 물론이요 여기저기 자주 엉겨 붙는다는 점이다.
녀석들이 대량 발생하는 때가 되면, 빨래도 밖에서 말리기 힘들어 지기에,
가뜩이나 요즘 같이 덥고 땀 흘리는 여름철에 빨래를 할 수 없게 만든다는 점
하나만으로 충분히 해중이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시커먼 외형에 정식 명칭인 '붉은등우단털파리' 처럼
평소에는 시커먼 날개로 붉은 등을 가리고 있으나,
날갯짓을 하며 그 붉은 등을 보이며 날아다니는 모습은
특히 5~6쌍이 한 번에 날라다며 내 쪽으로 날아오는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이지, 상상만 해도 싫다.
그런데 이런 '러브버그'가 만약 진짜 귀엽게 생겼다면 어땠을까?
러브버그가 강아지나 고양이처럼 생겼다고 생각해 보자.
2~3일 밖에 되지 않는 그들의 짧은 생을 조금은 슬퍼해 줬을지도 모르겠다.
또한 겁 없이 엉겨 붙은 녀석을 사랑스럽게 쓰다듬어 줬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러브 버그'가 대량 발생하는 시절, 매년 그 시절이 되면,
행사나 축제가 열렸을지도 모르고, 일부러 대량 발생하게끔 환경을 인공적으로
조성하고, 러브버그의 상품이나 각종 굿즈들을 판매하거나 구매했을지도 모른다.
역시 근복적으로 '러브버그'가 혐오스러운 이유는
이런저런 이유를 갔다 붙여 봤자, 근복적으로 징그럽게 생겼기 때문이며
아무리 매스컴에서 익충이라고 얘기해 봤자, 근복적으로 생긴 게
바뀌지 않는 이상은 혹은 세상의 미의 기준이 바뀌지 않는 이상은 해충이다.
생긴 것으로 판단해서 미안하지만, 어떨 수 없다.
러브 버그는 못생긴 해충이다.
지난 어느 날 언젠가,
차를 마시다 문뜩 방 천장을 바라봤을 때,
천장에 붙어 있는 한쌍의 이 벌레,
이 벌레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런데 그럼 못생긴 나도 해충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