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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귀찮은 유부남들의 유혹

보글보글 물 끓기 3분 전

by 차준생


나는 어릴 적 군복무에 몇몇 특혜를 받아 집에서 출퇴근하며 근무하는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를 했다. 불가 1~2년 사이에 법이 바뀌어, 국가유공자의 자녀는

군복무를 하지 않아도 됐었다고 하는데, 이미 군복무를 마치고 한참이나 지난 후에나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현역으로 군복무를 하는 친구들보다 훨씬 쉽게 군복무를

마친 것 역시 사실이고, 나는 2년 남짓의 공익근무 요원으로 복무한 기간이 제법 즐거웠으니

그 2년남짓의 기간을 그다지 손해 봤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일반적으로 군복무를 20대 초반에 하기 마련이다. 그 당시 나의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덕분에 서울, 사회에 남아 있는 사람은 친구들 중 내가 유일했고,

그렇게 군대를 간 친구들은 휴가를 나올 때면 어김없이 나를 찾았다.

군인 친구들에게는 정말 기다리고 기다리던 휴가일 것이지만, 내게 있어 하루가 멀다 하고

번갈아 가며 나오는 군인 친구들은 정말이지 가끔은 귀찮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물론, 군인들의 노고를 아주 모르는 바는 아니니 생색을 내거나 싫은 티를 낸 적은...

아마도 내 기억으로는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벌써 10년도 넘은,

30대가 훌쩍 넘어간 지금, 나는 최근 다시금 그때의 그 귀찮은 느낌을 받고 있다.

그때 그 여러 군인 친구들은 어느새 유부남이 되기도, 누군가는 한국을,

또 누군가는 서울을 떠나기도 했다.


그렇게 서울에 홀로 남아 있는 것은 또다시 '나'뿐인 상태가 되었다.


유부남들은 가끔 한 달에 한번 정도 와이프님에게 휴가를 받는 듯하다.

그렇게 그들은 또다시 나를 찾기 시작했고, 마치 군복무를 하던 10여 년 전 그때처럼

매주 번갈아가며, 언제부터인가 유부남들은 나를 찾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술을 잘 마시지 않으며, 등산이나 관람, 수집, 차 마시기 등, 비교적 얌전한(!?)

취미를 가진 나는 많은 친구들의 와이프 분들에게 있어서,

어느정도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이 된 것 같다.

(좋은 건가?)


어찌 되었든 그들은 그 누구도 아닌 나의 친구이기에, 당연히 모두 취향이 비슷비슷하고,

보고 싶거나 하고 싶은 것도 거기서 거기다.

그런 사정이다 보니, 한 번은 같은 전시장을 반복적으로 관람한 적도 있었다.

서로 다른 유부남들과 함께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유부남은 적어도 군인들 보다는 돈이 많다.

내가 다 사서 먹여줄 필요가 없다는 사실만으로 위안을 삼고 있다.

하지만 유부남들은 군인보다 즐겁지 못하다.


물론 어린 시절의 체력 때문도 있겠지만, 나는 휴가 나와 본인의 군대를 걱정하는

군인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휴가로 집을 떠나 본인의 가정을 걱정하지 않는

유부남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이번 주말 뭐 하냐?"

"왜?, 집에 있을 거야, 이번 주는 진짜 안 나갈 거야!"

"ㅇㅇㅇ 가자."

"너희 가족이랑?, 내가 거기 왜 끼어, 그리고 집에 있을 꺼라니까!"

"아니, 나랑 둘이 ㅇㅇㅇ에서 해리포터 팝업 한데..."

"네 차로 가자."

(본인은 해리포터를 어마어마하게 좋아한다.)


나는 나의 친구들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기원한다.

나와는 조금 더 드문드문 만날 수 있기를 소원해 본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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