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글보글 물 끓기 3분 전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이 '대충'이라는
것에 많이 당하고 살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특히 나는 무엇인가를 읽는 것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안경을 쓰지 않으면 도통 뭔가를 읽으려 시도조차 하지 않는
이상하고 고약한 버릇이 있다. 보통 근무 할 때 외에는 안경을 잘 쓰지 않으며,
뭔가 마음 잡고 읽어야겠다고 생각이 들지 않는 한 안경을 잘 쓰지 않는다.
특히 그중에서도 무엇인가의 설명서를 읽는 일을 몹시 귀찮아한다.
그렇기에 보통 어떤 물건을 만져 보고 사용해 가면서 사용법을 익히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용법을 모르고 사용하다가 결국
나중에서야 제대로 된 사용법을 깨닫고 같은 제품을 재구매하는 상황도
적잖게 생기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 몹쓸 버릇은 잘 고쳐지지 않는다.
지난 얼마 전의 일이다.
나는 주기적으로 염색을 한다.
나는 나이에 비해서는 새치가 굉장히 많은 편이며,
사실 새치라고 하기도 부끄러울 만큼 염색을 하지 않으면 백발에 가깝다.
뭐 세월에 저항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 나이 때 보다 더 늙어 보이는 것만은 사양하고 싶다.
'그래도 아직은 30대인데, 백발은 너무하지 않나!?'
또한 분명 이렇게 나의 머릿가죽이 새 하얗게 바래 버린 것은 세월 탓만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분명 나는 현 직장에 입사하기 전까지는 새치가 드문드문 있긴 했어도
염색할 정도로 심하지는 않았다. 나는 분명 이것 또한 산업재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늘 염색약을 구매하며 산재 처리를 받을 수 있어야 된다고
혼자 투덜투덜거리기도 한다.
최근 회사일도 조금 바쁘고 휴가철까지 있는 바람에 염색을 조금 미뤘더니,
어느새 내 머릿가죽이 회색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헌데 며칠 후 조금 중요한 일정이 있어 회색머리로 가기가 조금 민망스러워
염색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집에서 염색약을 찾아봤지만,
늘 사용하던 염색약도 때 마침 다 떨어졌음을 깨닫고,
부랴부랴 집 근처 화장품 매장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날도 역시 안경을 쓰지 않고 나갔기에 무엇인가를 읽으려 하지 않았고,
대충 염색약 코너에 있는 적당한 용량의 제품을 집어 나왔다.
그리고는 돌아와 포장을 뜯고,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설명서나 용법 따위는 읽지도 않은 채 쓰레기통으로 던졌다.
'대충 30분이면 되겠지...'
그렇게 약을 바르고 앉아 차를 한 잔 마시보니 30분이 금방 넘어 버렸다.
그렇게 샴푸를 하며 약을 씻어 냈는데, 내 머리색은 변함없이 그대로였다.
그렇게 부랴부랴 쓰레기통에 던져 넣어뒀던 포장지와 설명서를 꺼내어 들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너무나도 당당하고 크게 쓰인 제품의 이름.
'탈모 완화에 탁월한 효과!'
그렇다 그것은 염색약이 아니라 탈모 완화제였던 것 이다.
분명 염색약 코너에 같았는데, 아마 또 대충 읽지도 않고
헤어 케어 코너를 염색약 코너로 착각한 것일 것이다.
어차피 다시 염색해야 될 거, 대충 머리의 물기만 털어내고 다시 매장으로 향했다.
역시 나 처럼 멍청하면 몸이 고생하게 되어 있다.
'그래도 문명인으로써 글씨를 좀 읽어 보려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