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글보글 물 끓기 3분 전
말차(抹茶)
녹찻잎을 곱게 갈아 가루형태로 만들어 마시는 일본식 차의 형태.
나는 주로 잎차를 마시며, 가끔은 티백형태의 차도 종종 마신다.
잎차건 티백이건, 보통 차는 찻잎을 우려서 마시게 된다.
하지만 말차는 찻잎을 갈아 가루 내어 마시는 형태이니,
찻잎 자체를 먹는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나는 말차를 아이스크림이나, 라테 같은 형태 먹어는 봤지만,
말차를 순수한 차로써 마셔본 적은 아마도 없는 것 같다.
여행 중에 멋모르고 뽑아 먹은 녹차 PET가 말차였을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 정식으로 말차를 마셔본 적은 없다.
'정식으로 말차를 마신다'는 말이 좀 우습긴 한데,
내가 가진 작고 편협하고 협소한 말차에 대한 지식은 보통
소설이나 드라마 혹은 만화 같은 미디어에서 온 것이며,
내가 가진 머릿속의 말차에 대한 이미지는 이러하다.
다다미 방 같은 곳에 꿇어앉아(난 대체 뭘 보고 이런 이미지를 머릿속에 갖고 있지?)
한 손에 사발을 들고, 또 다른 한 손에는 나무로 된 까칠한 솔을 들고서는
그 사발에 물과 말차를 풀어 까칠한 솔 같은 도구로 연신 빙글빙글 저어가며
물에 말차를 잘 풀어낸다. 그 후 뜨거운 찻물을 부어 중탕하여 즐기는 형태의 녹차.
이 단편적이고 편협한 정보가 내가 갖고 있는 말차에 대한 전부이다.
이런 잘 알지도 못하는 말차를 기회가 생겨 조금 구매하였는데,
과연 내 머릿속 이미지에 등장하던 그 까칠한 솔과 같은 도구도
같이 구매해야 되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생김과 동시에
'녹차 가루가 물에 잘 안 녹나? 왜 따로 저러 도구까지 사용하는 것일까?
라는 몇 가지 소소한 의문점들이 생겼다.
보아하니 구매한 말차 가루는 입자가 굉장히 곱고 세밀하여
아마도 금방이지 물에 녹을 것 같았고, 더욱이 그 '솔'같은 도구의
필요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져갔다.
더 군다가 그 '솔'은 내 생각보다는 제법 가격대가 있는 물건이기도 했다.
그렇게 몇 번을 매장에서 이 '솔'을 짚었다 놓았다를 반복하며,
고민한 끝에 일단은 좀 더 알아보기로 했다.
딱히 사용법도, 용도도 모르는 내게 있어 지금 당장
이 '솔'은 돼지목에 진주 목걸이처럼 느껴졌다.
그리고는 돌아와 그 까칠한 '솔'의 용도와 사용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 까칠한 '솔'은 '다선(茶筅)'라고 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 다선이라는 물건은 단순히 가루를 풀어 주는 역할이 아닌
거품을 내는 용도 라고 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각종 미디어에서 접했던,
연신 바쁘게 빙글빙글 '다선'을 져어가며 가루를 풀던 이미지도 이해가 됐다.
그래서 이 다선으로 거품을 내어 풀면 맛이 다른 걸까?
궁금하다. 한 번쯤 비교해서 경험해 보고 싶긴 한데,
이 궁금증을 해소하는데, 그 노동력과 그 비용을 지불할 필요가 있는 걸까?
내가 장담컨대, 내 성격상 귀찮아서, 이 다선을 한번 사용하고는
절대 자주(다시) 사용하게 되지 않을 것이라는 걸 불 보듯,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즉 여전히 다선은 내게 있어 돼지목의 진주목걸이 같이 느껴졌다.
조금 더 고민을 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말차 롤케이크, 말차 양갱,
말차 쵸코렛이 담긴 쇼핑백이 잔뜩 들려 있었다.
이런 군것질 거리를 나도 모르게 잔뜩 사서 나왔면서,
다선 하나쯤 더 사도 괜찮지 않을까?
합리적인 척 고민하고 있었지만,
사실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