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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차의 맛

보글보글 물 끓기 3분 전

by 차준생



내가 둔감한 걸지도 모르겠지만,

차는 한두 번 마셔서는 그 맛과 향을 절대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나에게 눈을 가리고 맛과 향만으로 차를 분간해 내라고 한다면,

몇몇 아주 특색이 강한 차를 제외한다면, 분간해내지도 못할 것이다.

물론 나의 둔감함과 또 차에 대한 얕은 지식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어느 정도는 차 특유의 맛과 향이 갖는 특징에 있지 않을까도 생각한다.


차의 맛은 자극 적이거나 뚜렷하지 않고 은은하며 옅다.

달리 말하자면 차의 맛은 상당히 모호하다. 물론 차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내가 즐겨 마시는 차들에 경우 대게 그러한 것 같다.

하지만 향은 맛보다는 훨씬 더 차 자신들의 고유의 색깔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역시 그렇게까지 뚜렷하지 않아 모호한 부분이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같은 차를 적어도 한 달 이상을 즐겨야지 그나마

그 차만의 맛과 향을 조금씩 깨달을 수 있게 되는 것 같으며,

그렇게 한 달쯤 같은 차를 즐기고 나서, 다른 차를 다시 즐기다가,

시간이 지나 다시 처음의 그 차를 마주했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와닿게 느껴지며,

맛과 향의 차이를 이전 보다 더 확실하게 느낄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그때의 다시 마주한 그 차는 분명,

이전보다는 훨씬 더 뚜렷하게 고유의 맛과 향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물론 그때도 여전히 옅고 은은한 모호함은 간직하고 있다.

이 모호함을 없애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렇게 여러 번의 이런 주기를 반복하다 보면 확실히 구분 짓고,

분간할 수 있게 되는 걸까?


가까워지고 또 멀어지고 다시 가까워지고를 반복하다 보면,

그렇게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를 반복하다 보면,

그런 기억과 시간들을 겹겹이 쌓아 올리다 보면,

그러다 보면 언젠가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오게 되는 걸까?


아직 나는 그 정도 경지에 이르지 못했기에 확실한 답은 모르겠다.

하지만 언젠가 나도 그럴 수 있기를,

그렇게 시간과 기억들이 부디 나를 배신하지 않기를 소망한다.


며칠 전 어느 분께서 내게 차를 내어 주시며,

맛이 어떻냐고, 귀한 차라고 말씀하셨다.

솔직히 나는 그저 보통의 녹차의 쌉쌀한 그 맛 외에는

전혀 맛도, 향도 특별한 것을 느끼지 못했지만,

의례 예의상 향이 좋다고 대답하고 말았다.


그렇게 대답하며 잠시 이러한 생각들을 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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