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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울분의 차 한잔

보글보글 물 끓기 3분 전

by 차준생


살다가 그리고 어쩌다 보니, 내 주변에는 부산과 전라도 출신의 친구들이 제법 있다.

물론 다들 좋은 사람들이지만 이 친구들과 요즘 같은 때에 피해야 될 얘기가 하나 있다.

그건 바로 '프로 야구'의 얘기이다. 부산의 자이언츠 와 광주의 타이거스

그들에게 야구는 단순 취미가 아닌 그보다 더 깊은 무언가가 있다고 느껴질 만큼

그들의 야구에 대한 열정은 정말이지 대단하다고 느낀다.


물론 나 역시도 '프로 야구'의 오랜 팬이다. 나 또한 서울이 아닌

강원도가 고향이지만, 애석하게도 강원도를 연고로 하는 프로 야구 구단은 없기에,

자연스럽게 나는 현제 생활하고 있는 서울을 연고로 하는 '트윈스'의 팬이 되었다.

트윈스와 자이언츠 그리고 타이거스 이 세 팀은 통칭 '엘롯기'라고 불리며,

한때 성적도 고만고만하고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는 사이인지라,


친구들과 야구 얘기를 하거나 시즌 중에는 퇴근 후 근처 치킨집에 모여

야구를 보는 경우도 많았는데, 올해는 사정이 조금 틀려졌다.

현제 트윈스는 1위, 그 외 자이언츠와 타이거스는 그다지 좋지 못한

시즌을 보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칫 입을 함부로 놀렸다가는

그들의 광기 어린 시선과 살기로 가득한 저주세례를 받을 생각을 하면...


특히 자이언츠는 조금 희망이 있으나, 타이거스는...

작년 우승팀이었던 타이거스의 올 시즌 부진은

전라도 출신 친구들에게는 적잖은 충격이었던 듯하다.

그렇기에 최근에는 좀처럼 그 친구들과의 야구얘기를 피하고 있으며,

퇴근 후 내 방에서 조용히 차를 마시며 홀로 경기를 관람하는 일이 많아졌다.


차와 야구, 그다지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지만,

나름 마음을 진정시키며 냉정하게 스포츠를 관람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그다지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는 말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강력한 우승후보인 트윈스는 거의 7할이 넘는

어마어마한 승률을 자랑했기에, 마음에 큰 동요 없이,

편한 마음으로 차를 마시며 경기를 관람할 수 있었으나,

최근 성적이 좋지 않음과 동시에 2위 팀이 무서운 기세로 추격하고 있다.

즉 더 이상 편한 마음으로 관람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차가 뜨거운 것인가?

아니면 지금 내 화가 뜨거운 것인가?

뜨거운 찻물로 삭히려 한 모금 들이켜 봤지만, 삭혀지지 않는,

나도 모르게 입에서 새어 나오는 한숨과 탄식들

차도 그리고 야구도 좋아하지만 차와 야구는 확실히 어울린다고 말하지는 못할 것 같다.


이래서 다들 스포츠를 보며 술을 마시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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