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글보글 물 끓기 3분 전
이불을 걷어차고, 짜증 섞인 듯 에어컨의 리모컨을 연신 눌러대던,
그러다가는 결국에는 참지 못하고 물을 한바탕 끼얹고 나서야
겨우겨우 잠을 청했던, 참으로 무더웠던 그 여름날의 밤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지나가고 있다.
너무 서두르지도 그렇다고 너무 느긋하지도 않게,
그렇게 저렇게 지나가고 있다.
아마도 조금만 지나면 금세 두꺼운 이불을 꼭 끓어 안고,
타닥! 타닥! 하는 정전기에 이따금씩 놀라지만
그럼에도 온갖 털로 된 것들을 몸에 둘둘 휘감고 움츠러들어
그저 겨우겨우 손가락만 움직여 귤껍질이나 까고 있는
그런 계절을 맞이하리라...
그때가 되면 환기를 위해 창을 여는 것조차도 버거워질 테니,
늦기 전에, 그때가 오기 전에,
요즘 같은 때에만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해야 한다.
나는 옥탑방에 살고 있다.
나의 방에서 방 문만 열고 나가면 바로 옥상으로 나갈 수 있다.
조금 느지막한 밤, 시끄럽던 자동차 소리마저 조금 잠잠해지는 늦은 밤,
캠핑의자와 끓여 뒀던 차를 주섬주섬 챙겨
방문을 열고 나간다.
특히 일요일밤이 좋다.
다들 내일 출근을 위해 귀갓길을 서둘러서 인지,
조금은 일찍 조용해지는 일요일 밤.
애석하게도 도시의 밤은 그다지 운치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 나름의 재미가 있다.
그렇게 골목이 보이는 옥상 한편, 적당한 곳에 의자를 펴고 앉아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재미난 생각들을 해본다.
어둠이 내려앉아 가로등 불빛이 미쳐 닿지 않은
어둑어둑하고 보이지 않는 골목의 어귀를 바라보며,
무서운 상상을 해보기도 하고,
일찌감치 간판에 불을 꺼트리고 셔터가 내려진 동네 술집을 보며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가게 사장님의 매출을 걱정해 보기도 하고,
멀리 보이는 왕복 8차선 도로에서 굉음을 내며 질주하는
시끄러운 외제차를 보며, 욕을 해보기도 한다.
이렇게 턱을 괴고 한참을 이런저런 쓸 때 없는 잡생각들을 하다 보면,
어느새 가지고 나왔던 차가 금세 식어 있다.
서둘러 남은 차들을 입에 털어 내고서는 다시 주섬주섬 챙겨 들어간다.
그렇게 가을밤, 도시에서의 신선놀음은 끝이 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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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옥상에서 차를 마시고 방으로 들어오니,
내 다리에 울긋불긋 모기 물린 자국으로 물들어 있었다.
다음에 나갈 때는 긴바지를 입던가, 모기향이라도 챙겨야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