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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얼렁뚱땅, 어림짐작

보글보글 물 끓기 3분 전

by 차준생



어떤 일을 오래 반복하다 보면,

'어림직작'이라는 것들이 끼어들어 버릴 때가 있다.

어떤 차라도 처음 마실 때에는 차를 우리는 방식이나,

찻잎의 용량 같은 것들이나, 물의 양, 온도 같은 세밀한 것들에 관심을 두고

저울 달거나, 눈금 따위를 꼼꼼히 확인하며 차의 맛을 낸다.


하지만 이런 일들을 오래 반복하다 보면,

이런 꼼꼼히 살피던 단계들을 겉치레로 여기게 되다가 결국에는

이런저런 방식들을 생략하고,

어느새 눈대중으로 어림짐작하여 차를 우리 게 된다.


꼭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가끔은 뜻하지 않은 맛을 느끼게 해 주기도 하고 때로는

이 겉치레로 여기던 것들의 소중함을 느낄 때도 있게 해 주니 말이다.

물론 대다수의 익숙함에서 오는 어림짐작과 눈대중은

크게 오차를 발생하게 하지는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어림짐작'이 조금 더 심해지만 '대충'이 되어 버린다.

'대충 이 정도면 됐겠지...'

'대충 이 정도면 마실만 하네...'

'대충 이 정도면...'

이렇게 이 '대충'이라는 것이 반복되어 쌓이다 보면,

어느새 습관이 되어 무심하게 되어 버린다.


내가 차를 마시는 것인지 그저 온수를 마시는 것인지도 모르고

그저 늘 같은 시간에 대충 끓여낸 차를

그저 무의식적으로 홀짝홀짝 입으로 털어내어 삼키는

일련의 과정을 기계적으로 수행하며 반복하는

그런 무심한 차시간이 되어 버린다.


이런 무심한 시간을 결코 나쁘다고 해서는 안된다.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모든 것들은 이러한 쇠퇴하는 과정을 겪는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환기가 필요하고 신선한 것이 필요한 것이다.

새로운 것은 늘 신선함을 재공 한다고 생각한다.


이 신선함이 환기가 될 수도 충격이 될 수도 있지만,

어찌 되었든 자극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자극을 받아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금

저울 눈 끔에 집중을 하던 그때로 돌아가게 해 준다.

하지만 나는 안다. 분명 이 마음도 머지않아 쇠퇴하여

어림짐작이라는 것을 거쳐 대충이라는 무심에 도달할 것을,


그렇기에 새로운 차를 좀 사야겠다.

차를 구매하기 위해 참 길고 장황하게도 자기 변론을 스스로에게

이렇게나 늘어놓고 자기 합리화를 한 번 해본다.


"어떤 차를 이번에는 마셔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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