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제와 같은 오늘입니다.
그러나
늘 새롭다는
최면의 휘장을
스스로 두른 채,
역시
서서히 침몰해 갈
시작의 처음에 섰습니다.
나날의 모습들이
머잖아
얇게 어슴푸레해지겠지요.
하지만,
생각의 바다를 좇아서인지
마음 설레는 돛단배 타고
시작의 처음에 또 섰습니다.
일상의 분주함에
삶의 소중한 것들이 매몰되어
아스라이
빈 메아리만 남을 그날이
언젠가 오겠지만,
여느 때처럼
겁 없이
시작의 처음에 또 섰습니다.
시작의 처음에서
떠오르는
얼굴이 있습니다.
번져 난 잉크 자국에서
글자를 복원하려는 아이처럼,
자세히 보이지 않아서
가까이 손 닿지 않아서
가슴방망이질만 할 뿐입니다.
조용히 저너머 바라봅니다.
창너머 우뚝 솟아 있는 산봉우리가
눈동자를 가득 채웁니다.
차곡차곡 채워진 그리움들이
주머니 넘치듯이 흘러나와
주변을 흠뻑 적실 때쯤이면,
시작의 처음처럼
처음의 마음처럼
깨끗한 은수저 준비해 놓고
그대를 영접하겠습니다.
그대를 만날
다시 올 내일은
어제 같지 않은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