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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준 Mar 06. 2024

72화. 결정

<흑마법서> 소설 연재

 그날부터 혜성은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종일 심문을 받아야 했다. 검사는 그에게 태백산맥 지하도시를 어떻게 알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혜성은 전부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강민수라는 사람이 자신에게 먼저 연락해서 진실을 알려줬다고 말이다. 검사는 혜성에게 강민수가 어디 있는지 말하라고 재촉했지만 혜성은 모른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건 진짜였다. 최명준 기자가 체포된 이후로 강민수는 연락을 끊고 잠적해 버렸다. 혜성은 그가 눈치가 아주 빠르다고 생각했다. 그는 강민수가 부디 잡히지 않고 외국으로 도망쳤기를 바랐다.


 혜성은 검사에게 최명준 기자를 고문했냐고 물었다.


 “최 기자가 그렇게 쉽게 제 이름을 불었을 리가 없어요. 당신들이 그를 고문한 거 맞죠?”


 하지만 검사는 자신이 묻는 말에만 대답하라고 짧게 대꾸했다.


 며칠 동안 이어진 심문이 끝나고 검사가 그에게 물었다.


 “김혜성 씨, 더 할 말 있습니까?”


 혜성은 고개를 저었다.


 “당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압니까?”


 혜성은 말없이 그를 쳐다봤다.


 “당신 때문에 사회가 분열하고 있소.”


 그 말에 혜성은 헛웃음이 나왔다.


 “그게 나 때문이에요?”


 “당신은 아마 정부의 잘못이라고 말하고 싶겠죠. 하지만 당신의 가장 큰 잘못은, 당신이 옳은 일을 한다는 착각을 한 거요.”


 그 말을 남기고 검사는 방을 나갔다.


 그날부터 혜성은 곧장 구치소에 갇혔다. 그에게는 면회도 허락되지 않았다. 밖에서는 혜성을 가둔 채로 재판이 진행되었다. 혜성과 최명준에 대한 재판이었다. 두 사람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뒤흔든 엄청난 사건을 저질렀기 때문에 자신들의 재판에 참석하지도 못했고,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혜성은 항의하지 않았다. 그는 하루 종일 웅크리고 누워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그는 이제 갇혀 있는 게 익숙하게 느껴졌고, 심지어 갇혀 있는 게 자신의 적성에 잘 맞는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후회는 없어. 주문을 다 썼잖아.’


 그는 생각했다.


 ‘주문이라도 다 쓰고 나서 갇혀서 다행이야.’


 그는 피고인도 변호사도 없는 재판이 도대체 어떤 식으로 진행되고 있을지 상상해 보았다. 그리고 새삼스럽게 자신의 행동이 정말로 나쁜 짓이었는지 돌이켜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내가 나쁜 짓을 한 것 같지 않는데.’


 그는 웅크린 채 미소를 지었다.


 ‘아마 둘 중 하나겠지. 내 행동이 나쁜 게 아니었거나, 아니면 나는 죄책감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악인이거나.’


 그는 누워서 눈을 감고 자신이 쓴 주문을 되짚어봤다. 그 주문들은 마치 혈관처럼 그의 몸을 흐르고 있었다.


 ‘주문을 다 써서 다행이야.’


 그는 중얼거렸다.


 “이제 난 가짜와 구분될 수 있어.”     




 한편 피고인도 변호사도 없는 재판은 며칠 만에 속전속결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연방대법원은 김혜성과 최명준 두 사람에게 연방보안법 위반이라는 죄목으로 사형, 그것도 공개처형을 선고했다. 항소는 원천봉쇄되었다. 재판장은 혜성이 강민수를 최명준 기자에게 소개해줌으로써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기밀을 누설하는데 공모한 죄가 있으므로 공개처형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처형식은 이틀 뒤였다.


 재판 결과에 한국 사회는 다시 뒤집어졌다. 판결이 공개된 즉시 전국에서 혜성과 최명준을 석방하고 노예제를 당장 끝내라는 시위가 열렸다. 또 한편으로는 재판 결과를 환영하며 태백산맥 지하시설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맞불시위도 열렸다. 양쪽 시위 모두 도깨비와 인간 등이 고르게 섞여 있었다.     




 법원은 혜성과 최명준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 것과 함께 노예 시설에 대해 보도한 대현일보를 폐쇄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대현일보의 기자들과 여러 언론인들은 이에 즉각 반발했다.


 재판 결과에 가장 분노한 것은 당연하게도 매려였다. 도깨비 왕국은 재판부를 맹비난하며 혜성을 당장 석방하라고 강력하게 항의했다. 여왕의 팬클럽 역시 법원 앞에서 정부와 법원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렇게 전국이 벌집을 쑤셔놓은 것처럼 되었지만 정작 혜성 본인은 그날 밤이 되어서야 자신의 사형 선고를 전해 듣게 되었다.


 “뭐라고? 내가 죽는다고?”


 혜성은 어이가 없어서 간수에게 물었다.


 “진짜예요? 농담하는 거죠?”


 “진짜입니다.”


 간수가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혜성은 한참을 침묵하다가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는 다시 감방 바닥에 웅크리고 누웠다.


 ‘내가 죽는구나......’


 그는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하긴 지금까지 죽을 고비를 그렇게 많이 넘겼는데 이쯤 되면 죽는 게 맞겠지. 근데 흑마법서가 완성되는 걸 보지도 못하고 죽는구나.’


 그는 그렇게 밤을 새웠다.     




 다음날 점심에 간수가 감방 문 밑으로 도시락을 넣어주며 말했다.


 “김 사장님, 이거 드세요.”


 혜성이 먹고 싶지 않다고 하자 문 밖에서 간수가 말했다.


 “사장님께 드리려고 제 아내가 열심히 만든 겁니다.”


 그리고는 간수는 잠시 망설이다가 덧붙였다.


 “진실을 밝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혜성은 그 말에 몸을 일으켰다.


 도시락은 휘황찬란할 정도로 예쁘고 맛있었다. 혜성은 그걸 먹으면서 행복을 느꼈다. 책을 완성한 후로 오랜만에 느끼는 행복이었다.


 잠시 후 문 밖에서 간수가 다시 와서 물었다.


 “사장님, 음식이 입에 맞으신가요?”


 “정말 맛있어요.”


 “다행이네요.”


 간수는 창살 사이로 혜성을 잠시 바라보다가 물었다.


 “사장님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인가요?”


 혜성은 흑마법서의 주문을 완성한 직후라고 대답하려고 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때의 그 감정은, 행복보다는 큰 짐을 덜었을 때의 안도에 가까웠다.


 “글쎄요, 마지막으로 행복했던 게 언제인지 기억도 잘 안 나네요.”


 혜성은 중얼거렸다.


 “아마도 어린 시절이었던 것 같아요. 아주 어렸을 때는 마법사가 되고 싶다, 훌륭한 책을 만들어야겠다는 집착이 전혀 없었어요. 집착이 없었던 그때가, 행복했는지 어떤지는 몰라도 편안했던 것 같아요.”


 혜성은 다 먹은 도시락을 문 밑으로 내밀면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밥을 먹은 뒤 혜성은 다시 웅크리고 누워 생각에 잠겼다. 그는 약간의 서글픔과 묘하게 들뜬 기분이 지속되는 상태로 그렇게 오랫동안 누워 있었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도 참 고단했구나.’


 그는 자신의 인생이 서글퍼서 눈물이 났다.


 ‘난 왜 그렇게 책을 쓰는 것에 매달렸을까. 도대체 책이 뭐라고.’


 하지만 그것은 그의 의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숙명이었다. 그는 슬펐지만 후회하지 않았다.


 그는 밤새 그렇게 누워 있었다.     




 한편 그 시각, 매려 궁전에서는 대신들이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혜성을 구하기 위해 무력을 투입해야 한다는 측과 거기에 반대하는 측이었다. 가운데 앉은 여왕은 무거운 표정으로 그들의 말을 듣고 있었다.


 한 대신이 말했다.


 “공자님이 하신 일은 더할 나위 없이 영웅적인 행동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만일 군사개입을 한다면 연방 정부가 우리를 공격할 게 불 보듯 뻔합니다. 지금의 우리 전력으로는 총력을 다해 연방을 상대해도 사흘도 버티기 어렵습니다.”


 그러자 영의정이 말했다.


 “그럼 어쩌자는 거요? 그분이 그냥 그렇게 죽도록 내버려 두자는 거요?”


 “물론 아니죠. 계속해서 항의를 하고, 또 만일 형이 집행된다면 광장에 그분의 동상과 기념관을 세워서......”


 영의정이 기가 막힌다는 듯 말을 잘랐다.


 “아, 그러니까 지금 죽은 다음에 비단옷을 입혀 주겠다, 이 말 아니오?”


 다른 대신이 말했다.


 “영상, 저도 영상의 말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매려 시민들도 생각해야 할 게 아닙니까? 우리가 연방을 이길 수 없는데 어떡합니까.”


 영의정은 눈이 충혈된 채 목소리를 높였다.


 “여러분, 공자님은 고통받는 도깨비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진실을 밝혔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분을 죽게 내버려 둔다면 우리가 시민들 앞에 어떻게 얼굴을 들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매려가 도깨비들을 보호하는 왕국이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다른 대신이 말했다.


 “그래서 전쟁을 하자는 겁니까? 왕국이 다 짓밟히게 놔두자는 겁니까?”


 영의정이 여왕에게 고개를 돌렸다.


 “폐하, 공자님을 구해야 합니다. 이것은 매려의 존재 이유입니다. 그분이 그냥 돌아가시게 두면 안 됩니다!”


 영의정의 외침에도 여왕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무거운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던 여왕은 한참을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난 마음을 정했습니다.”


 모든 대신이 긴장하며 여왕을 쳐다봤다.


 “우선, 이건 내 개인적인 마음으로 내리는 결정이 아님을 먼저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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