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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준 Mar 07. 2024

73화. 적

<흑마법서> 소설 연재

 다음 날 아침, 혜성은 감옥 밖으로 끌려 나왔다. 그는 밤새 잠을 못 자서 눈 밑에 짙게 그늘이 진 상태였다.


 처형장은 광화문 광장 한복판이었다. 혜성은 차에 태워져 광화문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그는 계속 조용히 흐느꼈다. 겁에 질리면서도 감정이 북받쳐서 견딜 수가 없었다.


 광화문에는 이미 수많은 인파가 모여 있었다. 방송국 차량과 기자들이 많이 보였고 혜성을 비난하거나 지지하는 피켓을 든 사람들도 있었다.


 차가 도착하자 사람들이 소리를 질렀다. 경찰들이 차로 다가가려는 사람들을 밀어냈다.


 혜성은 경찰관과 함께 차에서 내렸다. 군중의 고함소리가 더욱 커졌다. 혜성을 보며 우는 사람도 있었고 야유하는 사람도 있었다.


 광화문 한복판에는 교수대가 세워져 있었다. 혜성은 교수대를 보는 순간 오금이 저리면서도 그나마 그가 상상했던 것보다는 덜 끔찍한 처형이라는 생각이 들어 안심이 되었다.


 경찰이 혜성을 끌고 교수대 위로 올라갔다. 교수대 위에는 사형 집행인이 허공에 늘어진 밧줄을 옆에 두고 혜성을 기다리고 있었다. 혜성은 동그란 매듭의 밧줄 앞에 서자 다리가 풀려서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뒤로 결박된 손이 떨렸다. 밧줄 앞에 서자 비로소 죽음이 실감되었다.


 혜성은 자신을 보며 소리를 지르는 군중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떨리는 입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식으로 엄마 아빠랑 다시 만나게 되다니.’


 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다른 경찰차에서 경찰이 누군가를 끌고 내렸다. 최명준이었다.


 교수대에는 밧줄이 두 개였다. 하나는 혜성의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방금 도착한 최 기자의 것이었다. 경찰이 최 기자를 데리고 옆으로 다가오자 혜성은 한눈에 그가 심한 고문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최명준은 영혼이 갈가리 찢겨진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는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해서 경찰이 옆에서 그를 잡고 있어야 했다.


 최명준이 서서히 고개를 돌리고 혜성과 눈을 마주쳤다. 그는 한쪽 눈이 부어서 제대로 감기지 않은 상태였다. 그리고 좀 더 멀쩡한 나머지 한쪽 눈은 텅 비어 있었다. 혜성은 그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지만 그의 눈동자 안쪽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옆에 선 사형 집행인이 마이크를 들고 군중에게 뭐라 말을 했다. 혜성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는 말이었다. 그러자 군중이 다시 소리를 질렀다.


 사형 집행인은 잠시 짧게 뭔가를 말했지만 혜성은 알아듣지 못했다. 두려움으로 정신이 몽롱해져서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말을 마친 집행인이 마이크를 내려놓고 최명준에게 다가가 그의 목에 밧줄을 걸었다. 최명준은 움직이지 않았다.


 집행인은 이번에는 혜성의 목에도 밧줄을 걸었다. 혜성은 밧줄의 무게감에 움찔했다. 밧줄은 생각보다 두껍고 무거웠다.


 눈물이 그의 뺨을 흐르다가 떨어졌다. 혜성은 침을 삼켰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습니까?”


 집행인이 물었지만 혜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디선가 웅웅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혜성은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집행인이 레버를 당기면 발판이 사라지면서 혜성과 최명준은 아래로 떨어지며 목이 졸리게 된다. 집행인이 레버 쪽으로 다가갔다.


 혜성은 마지막으로 최명준에게 고개를 돌렸다.


 “기자님, 죄송합니다.”


 하지만 최명준은 그저 멍한 표정이었다.


 집행인이 레버를 잡고 당기려 했다. 그때 군중이 위를 가리키며 웅성거렸다.


 “저게 뭐지?”


 집행인도 레버에서 손을 놓고 위를 쳐다봤다.


 웅웅 거리는 소리가 커지더니 혜성의 머리칼이 바람에 나부꼈다. 혜성은 고개를 들었다.


 공중 함선 한 대가 혜성의 머리 위에 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함선에서 순식간에 사람 몇 명이 밧줄을 타고 내려왔다.


 군중이 소리를 질렀다. 경찰 몇 명이 교수대 위로 뛰어올라오자 함선의 문이 열리더니 총알이 날아와 경찰들을 쓰러뜨렸다. 살상용 총이 아닌 제압용 전기 충격 총이었다.


 빠른 속도로 함선에서 내려온 사람들은 혜성과 최명준의 목에 걸린 밧줄을 단칼에 끊어내고는 그들을 꽉 붙잡았다.


 “이게 무슨 일......”


 혜성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는 갑자기 위로 휙 올라갔다.


 순식간에 그는 함선 위로 끌어올려졌다. 최명준도 거의 동시에 끌어올려져서 두 사람은 함선 안으로 나동그라졌다. 함선 안에 있던 사람들이 달려와 그의 손목에 묶인 밧줄을 풀어줬다.


 지상의 경찰들이 함선을 향해 총을 쐈다. 하지만 혜성과 최 기자를 태운 공중 함선은 이미 빠른 속도로 광화문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공자님, 괜찮으신가요?”


 누군가가 그를 부축해 일으키며 물었다. 여왕이 붙여준 혜성의 경호원들 중 한 명이었다. 혜성은 자신도 모르게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정말이지, 정말......”


 혜성은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정말 바보 같은 짓을 했군요.”


 경호원도 웃으며 말했다.


 “저희도 압니다. 하지만 이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구해줘서 고마워요.”     




 함선은 순식간에 매려 궁전에 도착했다. 비행기가 착륙하자 기다리고 있던 여왕이 달려와 혜성을 끌어안았다.


 “혜성아, 괜찮아?”


 “난 괜찮아. 너는?”


 “네가 있으니 이제 괜찮아.”


 여왕의 품에 안긴 혜성의 눈에 옆에 서 있던 영의정이 들어왔다. 영의정은 혜성을 보고 안도하고 있었다.


 “최명준 기자님이 고문을 받은 것 같아. 그분을 잘 돌봐줘.”


 혜성이 말했다.


 “물론이지.”


 여왕은 옆에 있던 직원에게 말했다.


 “의료팀에게 김혜성 공자와 최 기자님을 진찰하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함선 안에서 궁전 직원들이 최명준을 들것에 싣고 나왔다. 혜성도 곧장 매려 병원으로 옮겨졌다.


 혜성을 진찰한 의사는 혜성이 극도의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으로 몸이 좀 쇠해졌긴 하지만 안정을 취하면 괜찮아질 거라고 말했다.


 의사가 말을 끝낼 즈음 갑자기 문이 열리며 이태민과 박준식이 들어왔다.


 “사장님!”


 그들은 혜성에게 달려와 그를 끌어안았다. 둘 다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사장님, 다시는 못 보는 줄 알았어요.”


 이태민이 흐느끼며 말했다. 박준식도 혜성을 끌어안고 울었다.


 “그러게 제가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이게 뭐예요......”


 “죄송합니다.”


 혜성이 웃으며 말했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네요.”


 혜성은 두 사람을 안심시킨 뒤 물었다.


 “이사님은 깨어나셨나요?”


 “아니요. 근데 상태가 많이 좋아져서 곧 깨어날 것 같다고 의사가 그랬어요.”


 이태민이 대답했다.


 “지금은 이사님보다 사장님이 걱정이에요.”


 “매려 전체가 걱정이죠. 처형장에서 절 구했으니 연방이 가만있지 않을 테니까.”


 그 말에 박준식은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고 보니 그렇네. 사장님을 다시 봐서 좋긴 하지만 우린 이제 큰일 난 거야!”


 혜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윤이한테 가봐야겠어요. 윤이는 지금 어디 있죠?”     




 궁전의 회의실에는 이미 여왕과 대신들이 모여 있었다. 혜성이 회의실로 들어가자 모두들 혜성을 보며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영의정이 제일 먼저 말을 꺼냈다.


 “공자님, 다시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혜성은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가 감사하죠.”


 여왕이 물었다.


 “몸은 좀 어때?”


 “난 완전히 괜찮아. 그나저나 매려가 더 걱정인데.”


 “안 그래도 지금 그 얘기를 하고 있었어.”


 그때 여왕의 자리에 있던 전화기에서 빨간 불이 깜박였다. 여왕이 앞에 놓인 수화기를 들더니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네, 연결하세요.”


 그러자 잠시 후 회의실의 대형 TV가 켜지면서 대통령의 얼굴이 나타났다. 대통령의 얼굴은 분노로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매려 여왕, 지금 당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기나 합니까?”


 대통령이 살얼음 같은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연방 정부에게 묻고 싶은 말입니다.”


 여왕이 대꾸했다.


 “매려는 지금 연방의 적을 보호하고 있소. 그 자를 당장 내놓으시오.”


 “싫다면?”


 “그렇다면 연방은 단호한 대응을 취할 겁니다.”


 여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단호하게 대응하겠소.”


 대통령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말했다.


 “좋습니다. 지금부터 연방은 매려를 연방의 적으로 간주하겠습니다.”


 그러더니 화면이 꺼졌다.


 회의실이 고요해졌다. 여왕은 돌아서서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여러분.”


 여왕이 말했다.


 “매려가 실로 오랜만에 외세의 침입에 맞서게 되었군요. 지금 당장 왕국 전체에 최고 등급 방어 태세를 갖추세요.”


 신하들이 고개를 숙였다.


 “예, 폐하.”     




 매려 왕국 전체에 긴급 상황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렸다. 매려의 시민들은 급히 성 안으로 몸을 피했다. 도시의 성벽을 지키던 보초들도 성 안으로 들어갔다.


 도시 전체의 시스템을 관리하는 궁전의 기술자들이 여왕의 명령으로 최고 등급 방어 시스템을 작동시켰다. 그러자 도시의 성벽 위로 거대한 반투명 막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마법 방어막이었다.


 황금빛의 반투명 방어막은 반원처럼 도시 전체를 덮어 씌웠다. 여왕과 신하들, 그리고 혜성은 궁전의 중앙 관리실에서 화면으로 그 모습을 지켜봤다.


 잠시 후 관리실의 직원 하나가 외쳤다.


 “연방의 군대가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그 말이 끝나고 연방군이 육안에 들어오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군인들이 탄 트럭들과 여러 대의 탱크가 도시의 성벽 앞까지 도착했다.


 관리실 중앙에 있는 화면이 켜지더니 대통령의 얼굴이 나타났다.


 “여왕, 마지막 기회를 주겠소. 죄수 두 명을 내놓으시오.”


 여왕이 담담하게 대꾸했다.


 “거절합니다.”


 그러자 대통령 역시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알겠소.”


 그리고는 화면이 꺼졌다.


 잠시 후 트럭에서 내린 군인들이 방어막을 향해 일제히 총을 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탱크의 포구가 불을 뿜었다.


 한동안 이어지던 사격이 멈췄다. 혜성은 긴장해서 주먹을 꽉 쥐었다. 하지만 방어막은 조금도 손상되지 않았다.


 “쉽지 않을 걸.”


 여왕이 중얼거렸다.


 다시 사격이 이어졌지만 연방군은 방어막을 뚫지 못했다. 그러자 잠시 후 사격을 중단한 연방군은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포기한 건가? 뭘 하려는 거지?”


 혜성이 물었다.


 “내 생각에는......”


 여왕이 말을 하고 있는데 관리실의 다른 직원이 외쳤다.


 “이쪽으로 미사일이 날아오고 있습니다!”


 “역시.”


 여왕이 중얼거렸다.


 “2분 후면 방어막의 위쪽에 맞을 것 같습니다.”


 “괜찮을까?”


 혜성이 물었다.


 “그 정도는 괜찮을 거야.”


 여왕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잠시 후 미사일이 날아와 황금빛 방어막에 부딪혔다.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면서 허공이 뿌옇게 흐려졌지만 방어막은 멀쩡했다.


 잠시 후 연방은 다시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번에는 세 대의 미사일이 동시에 매려를 향해 날아왔다.


 혜성은 화면을 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그는 불안해서 여왕을 쳐다봤지만 여왕은 무표정하게 화면을 응시할 뿐이었다.


 세 대의 미사일은 모두 앞선 미사일이 맞은 위치에 적중했다. 미사일이 폭발하면서 하늘이 잿빛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방어막은 미동도 없었다.


 “방어막의 성능이 이로써 증명되었군요. 당분간은 안전할 겁니다. 우린 회의실로 가서 향후 대처를 의논합시다.”


 여왕은 그렇게 말한 뒤 혜성에게 물었다.


 “너도 같이 갈래?”


 “아니, 난 서점 직원들한테 가봐야겠어. 나도 의논할 게 있거든.”


 “알겠어. 그럼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바로 연락해.”


 “너도.”


 그들은 관리실을 나가 헤어졌다. 혜성은 자신의 방으로 달려갔다. 그곳에 이태민과 박준식이 있었다.    



 

 그 후로 다시 미사일 공격은 없었다. 하지만 도시 밖에 진을 친 군대는 물러가지 않았다. 매려 역시 그들에게 반격을 하지는 않았지만 여왕의 명령으로 언제든지 바로 맞대응을 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춘 상태였다.


 여왕은 회의실에서 대신들과 열띤 의논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혜성과 최명준을 연방에게 넘겨주면 모든 것이 끝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왕이 그런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못 막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매려는 지금 상황에서 한 달은 버틸 수 있습니다. 그동안 연방과 협상을 하시죠.”


 영의정이 말했다.


 “하지만 우리가 운 좋게 한 달을 버틸 수 있다고 해도 그 이후에는 식량이 떨어져서 버틸 수 없습니다. 연방도 그걸 알고 있을 테니 시간은 연방의 편입니다.”


 다른 대신이 말했다.


 여왕은 무거운 표정으로 생각을 하다 말했다.


 “일단은 현재 우리의 상황과 이 나라의 사법살인을 전 세계에 알려야 합니다. 여론을 우리 편으로 만드는 게 우선이에요.”


 영의정이 대답했다.


 “네, 외신과 최대한 긴밀하게 접촉하겠습니다.”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내가 직접 인터뷰를 할게요.”


 “준비해 놓겠습니다.”


 그때 여왕의 자리에 놓인 전화기가 깜박였다. 여왕이 전화기의 버튼을 누르자 관리실 직원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 지금 연방에서 현무 44를 기지에서 꺼내 움직이고 있는 게 포착되었습니다.”


 “현무 44?”


 “제국이 만들었다가 한반도에 놓고 간 초대형 레이저포입니다. 지금 그걸 우리 쪽으로 실어오고 있습니다.”


 여왕이 눈을 감은 채 말했다.


 “알겠습니다. 또 다른 상황이 생기면 계속 보고하세요.”


 여왕이 통화를 끝내자 한 대신이 말했다.


 “현무 44는 원래 우주에서 지상을 폭격하기 위한 레이저포입니다. 그걸 지상에서 우리 방어막에 쏜다면 방어막이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영의정이 말했다.


 “연방이 정말 작정하고 덤비는군요.”


 회의실 안이 잠시 조용해졌다. 여왕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회의실 문이 열리더니 혜성이 뛰어 들어왔다.


 “회의 도중에 죄송합니다. 근데 제가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현무 44는 작은 빌딩만 한 크기의 거대한 은색 레이저포였다. 식민지 시절 소화가 한반도의 군수공장에서 만들던 초강력 병기였는데 완성된 직후 소화가 전쟁에서 패하는 바람에 소화군은 그 무기를 한국에 두고 철수하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 바로 그 무기가 공중 함선 4대에 매달려 하늘을 날아오고 있었다. 서울 하늘을 가로지르는 공중 함선과 레이저포가 지상에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땅 위를 걷던 사람들은 고개를 들고 그 물건을 보고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공중함선은 기지에서 레이저포를 꺼내고 몇 시간 후 매려 도시 앞에 도달했다. 함선이 땅에 레이저포를 내려놓자 군인들은 바쁘게 오가며 발사 준비를 했다.


 그동안 매려는 조용했다. 압도적인 무기가 도착했지만 전혀 반응이 없었다.


 현무 44가 지상에 설치되고 발사 준비가 끝났다. 레이저포는 매려의 성문 정중앙을 겨냥하고 있었다.


 연방의 공군 대위가 현무 44의 조종석에 앉아 무기를 작동시켰다. 그러자 거대한 레이저포가 낮게 으르렁거리며 진동했다. 긴 은색 기둥의 앞부분이 열리더니 지름이 1미터 정도 되는 포구가 돌출되었다.


 대통령이 현무 44의 발사를 허가했다. 지시를 받은 대위는 매려를 향해 레이저를 발사했다.


 엄청난 소음과 함께 레이저가 뿜어져 나왔다. 지름 1미터의 붉은 레이저가 매려의 방어막에 부딪혔다. 방어막은 몇 초 동안 잘 버티는가 싶었지만 황금빛 반구는 점점 색이 변하면서 일그러졌다. 그러더니 결국 레이저가 녹이는 부분에 구멍이 뚫리고 말았다. 방어막을 파괴한 레이저는 그 뒤에 있는 성문마저 순식간에 녹여버렸다.


 매려 전체를 감싸고 있던 반구가 일그러지면서 천천히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연방군은 방어막이 전부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성 안으로 진입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대응사격을 할 거라 예상되었던 매려의 수비군은 흔적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연방군 사령관은 곧장 궁전 안으로 진입을 명령했다. 하지만 군인들이 궁전 안으로 들어갔을 때는 궁전 역시 텅 비어 있었다.


 사령관은 대통령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차원문을 썼군.”


 소식을 들은 대통령이 중얼거렸다. 그는 다시 명령을 내렸다.


 “군대를 불사신 서점으로 이동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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