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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의 시작

- 경포 바다

by 로캉
강릉행 통일호 열차는

한 때 유명해진 정동진역을 지나 힘겨운 밤샘으로 인해 선로연결선을 지날 때마다 “덜컹덜컹” 거렸고 엔진 소리는 열차 몸통이 소리를 지르듯이 “그르렁” 거렸다. 마치 열차에 울려 퍼지는 노래에 박자를 맞추는 드러머 같았다.


강릉역에 아마도 7시 40분쯤 도착했을 것이다.

분주히 등교하는 학생과는 다른 순수한 이방인처럼 여유롭게 경포대 버스를 탔다.

해는 벌써 떴고, 여름휴가철이 한참 지난 처량한 모래사장에 앉아

난 바다를 하염없이 보았던 것 같다.


그때가 스물이었나?

지금도 문득 그 경포 바다에 서서 뭔 생각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으나,

내 삶이 지치고 힘들 때면, 그렇게 차를 타고 바다에게 달려가던 방황, 역마살, 객기, 주접, 습관, 무모함 등등 뭐라 불려도 상관없는 것의 시작이 그곳이었음을 기억한다.



그 후로도 금요일 수업을 빼거나, 군대 휴복학을 거치면서 차비와 조금의 여비만 생기면, 또는 사람이 미치도록 그립거나, 관계가 지치고 힘들어질 때도 막차 여행을 했다. 알바로 일해야 할 때를 빼고는 부단히도 돌아다녔다.

부산행, 여수행, 목포행으로 종점까지 가는 기차를 타고 뭘 찾는 사람처럼 헤매어 다녔고, 기차 종점여행이 지칠 무렵에는 버스를 타고, 가끔은 걸으면서 돌아다녔다.

동해 북쪽 화진포부터 마산 앞바다까지, 강인줄 알고 갔던 소금강도, 부여 백마강도, 설악산 울산 바위도, 부산 태종대 절벽 바다도, 오동도 섬바다도, 목포 유달산에서 본 바다도 파란 바다일 뿐이었지만 혼자 파랑새를 찾는 아이처럼 무언가를 찾아다녔다.

하지만 산도 바다도 내게 아무런 해답을 주지는 않았고 사실 난 답을 구한 적도 없는 것 같다.


살다 보면 무의미해 보이는 일들이 많지만 무얼 한다는 것, 어디를 간다는 것은 결과적으로는 보태짐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가난한 청춘의 방황은 때로는

1) 휴가 나와 놀 친구 없어 혼자 여행 온 장교 아저씨(?: 사실은 청년이다.)에게 헌팅도 당해 같이 여행하고,

2) 재수한 친구를 위해 면접 보러 같이 온 청년들(3명)과 설악산도 오르고,

3) 휴가 나와 간 만리포에서 군입대를 앞둔 청년과 낮술 먹고 인생을 얘기하기도 하고,

4) 내장산에서 오전에 스친 사람을 대천 바다에서 다시 만난 인연으로 밤 새 술 먹고 같이 민박한 일 등

지나는 길마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많은 인연을 만나고 헤어졌다.

그로 인해 변한 것도, 특별히 바뀐 것도 없지만, 젊은 날의 내 시간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료한 시간은 아니었다는 자기만족과 시간의 흐름을 온몸으로 느끼던 화려하진 않아도 불타던(?) 시절이었다는


위로와 나이 든 현재의 합리화만 남았더라도 후회는 없다.



설악산에서/ 백마강에서( 남은 것은 1회용 사진기로 찍은 몇 장 뿐)

https://youtu.be/IwZtD0XB7JQ?si=zcvPgpxWvjllWgbN

그 시절의 아픔이나 슬픔은 김광석으로 얘기하자(1994.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였음을)


*첨: 글과 상관없는 그림…

23년 여름 무척이나 더웠던 날에 한성순성길을 걸으며(캐데헌으로 유명해진) 북한산을 보며..(25.10.25. 수채화)


-25. 10월 말. 로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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