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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네 다락방에서

- 낭만과 우울의 조울증

by 로캉

사람들은 외국 영화에 나오는 감성적 다락(방)을 상상하고 소망하지만

어린 시절에 ‘나만의 방‘(버지니아 울프)이던 다락의 외형은 시대적 과도기에 만들어진, 부엌 위에 창고 같은 누추한 모습이었다. 그래도 아버지가 직접 만드셨다는 다락은 내게 아버지의 유산이고 어머니의 자궁과도 같은 감성의 안식처였다.


그 다락방에서 큰형이 길거리에서 속아 사온 백과사전만큼 커다란(한 900페이지에 작은 글씨로 가끔 삽화가 들어간) <삼국지>를 읽은 것과 누군가 사다 논 낡은 삼중당 문고판 <황순원 단편집 -독 짓는 늙은이>를 발견하여 읽기 시작한 순간이 내 문학의 시작이 되었다.

다락방에서 누워 책을 읽고 있으면

휴일 아침마다 찾아오는 빚쟁이 아줌마들의 신경질도, 학창 시절 한 번도 우유를 먹어 보지 못할 정도에 가난의 서러움도,

막내여서 다 받고 자란 것이 아니라 사랑도 관심도 받을게 적어 외톨이 같았던 외로움도,

너무 일찍 세상을 알아버린 어린 내게는

현실을 탈출할 수 있는 도피의 시간이 되었다.

그 잠시의 도피를 위해 용돈도 없는 시절에 돈이라도 조금 모이면 나는 3킬로 떨어진 옆 금호동 시장에 있던 도원서점으로 달려갔다.

돈이 없는 날에는 한참 소설, 시집코너에서 책 제목을 외우듯 책을 보다가

“ 나중에 올게요~”말하고 쑥스럽게 나왔고,

주머니에 책 한 권 살 돈을 넣고 간 날에는 눈치 덜 보며 1시간 정도 책방 탐험을 하곤 했다.

고2 때쯤, 어느 날 책방 사장님 처제인 누나가 말을 걸었다.


“ 고르기 어려우면 책 소개 해줄까요?”

얼마나 내가 결정장애자처럼 보였으면…., 아니 너무 오랫동안 책을 뽑았다 넣었다를 반복하는 것이 민폐이거나 안쓰러웠을지도….

화들짝 급해진 나는 빠르게 책을 골라 나가면서 생각했다.

(“ 당분간은 오지 말아야겠다.”)

남들보다 심하게 숫기가 없던 그때에 나는 모르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 자체가 어색하던 요즘으로 치면 “극 I”였던 것 같다. 나중에 20대 초반이던 책방 누나와 얼굴을 터서 대화하고 책 소개를 받기도 했고, 짧은 책 얘기도 가끔 하곤 했다.

그때 빠져 있던 황순원 작가의 <나무들 비탈에 서다>, <목 넘이 마을에 개>, <카인의 후예>, <탈>, <일월> 같은 무언가 인간의 본성과 전후에 외로움들이 가득 담겨있는 소설을 읽었다.

이런 실존주의 소설은 실존주의 철학책(실존주의 소설)에 손이 가게 했다. 너무 많은 책 속에서 고르는 기준을 정했다.


”제목이 시적으로 멋있을 것“

아무것도 없던 시절에 독서에도 무언가 허세가 필요했던 것일까.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니체.

<죽음에 이르는 병>, 키르케고르

<전락>, <시지프스의 신화>, <이방인>. 까뮈

<변신>, <성>. 카프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테라 등의 책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무작정 읽었다.


세상이 힘들거나 혼자의 시간이 필요할 때,
다락방에 숨어 책을 읽거나 상상을 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고2 여름 방학에 난 사춘기를 겪었던 거 같다. 하늘과는 기와와 나무 합판 하나로만 나눠져 있던 다락방에 누워(사실 서있을 수 없는 낮은 다락방이라서 늘 누워 있었다.) 책을 읽고 잠들면 나는 구운몽의 주인공처럼 일장춘몽이지만 꿈꿀 수 있었다.


그 꿈속에서의 세상은 어머니의 칼칼한 김칫국이거나 소복이 덮인 오므라이스( 어머니는 양식집 주방일을 하셔서 전라도식(?) 양식을 해주심.) 계란 이불처럼 밝고 따뜻했었다.

다락 밑 부엌에서 모락모락 저녁 솥밥의 구수한 밥향이 다락에 퍼지면 왠지 위로받는 것처럼….

눈물 나게 행복감을 느꼈던 것 같다.


-25.11.15. 로캉.


이제 가을인가 했더니 겨울이네요. (11월)
11월 중순. 집에서 본 미친 가을 석양
왠지 쓸쓸한 어느 유럽 도시(25.10. 로캉. 펜+수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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