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날은 간다
난 세상에 유배된 걸까?
가끔 삶이 너무 힘들어지면 ‘시지프스’처럼 끝없이 돌을 굴리며 산을 오르는 나를 상상하곤 했다.
중학교 때는 좋은 집을 꿈꿔 건축과를 가고 싶었고 고등학생 때는 국문과나 독문과를 가고 싶었지만 주위에 어른들은 철없는 놈이라고 했다. 또한 시대적 선호가 빨리 취업하거나 국가의 녹봉(?)을 받는 직업에 맞는 학과로 진학해야 함을 강요했다.
나중에야 좋은 직업은 ‘사람을 상대하지 않거나 적게 상대하는 것‘이라는 나만의 진리(?)를 깨달았지만 그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그나마 대학에서 제일 좋았던 것은 수많은 책이 있는 도서관을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원하는 전공을 할 수 없었던 나에 대한 보상으로 졸업 전까지 도서관 책을 모두 읽으리라, 아니 한 번씩은 펼쳐보리라는 다짐을 했다. 아마 그 다짐을 지켰더라면 졸업을 못했을 거라는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지만, 시간이 나면 도서관에서 책구경하는 것은 그 당시 내게는 유일한 취미였다.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나 콜린 윌슨의 <아웃사이더> 같은 책을 읽으며 불안하고 어정쩡한 나 자신에 대한 계속된 의문을 던지기도 했다.
한동안은 계속 책만 읽었고, 한동안은 계속 시를 썼다.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과 현실적 누추함이 당시의 나였다.
난 이 길을 가도 되나? 현실과 낭만 사이, 이상과 존재사이에 늘 불안과 열정이 공존했다.
알바 없이는 대학 등록도 할 수 없는 현실에서 내게 사랑의 열병이나 시는 사치에 지나지 않았다. 더 이상 술 취해 다락방에서 꿈만 꿀 수 없으니….
그동안 쓴 시를 가져가 비평가인 영문과 교수님(아마 기억도 못하겠지만)께 엄청나게 혹평을 받은 날 이후에
난 더 이상 시집을 읽을 수도, 쓸 수도 없었다.
시는 공허하게 압축된 한숨과도 같았다.
어차피 난 카프카도, 까뮈도 될 수가 없고, 내 글이 세상에 남겨지지 않을 숨소리로 사라질 테니…. 더 이상의 집착은 허황된 신기루에 지나지 않음을 알았다.
그리고
아무 글도 쓸 수 없게 하는,
이젠 봄날이 가고 있음을 알려주는 어느 늦여름에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어~, 나야, ,,,,, “
“ 훈이 형이 죽었어. “
아무 말 없이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느꼈다.
(* 20년도 더 지난 이야기를 언젠가는 해야 하고 써야 함을 느끼며 … 다음 편에)
- 25.11.23. 로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