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릉행 통일호 막차
외로움을 가방처럼 매고 다니던 나는
스물까지 바다를 본 적이 없다.
그 시절 고등학생이 거의 그렇듯 수학여행을 경주로 갔지만 바다를 가지는 않았고, 단짝 친구와 토요일 자습에서 도망쳐 지하철을 타고 간 인천에서는 인천항 근처 공단만 해메이다 온 기억 밖에 없다.
어쩌면 나도, 강원도 양양 산동네가 고향이던 친구 녀석도 바다가 어떻게 생겼는지 그때까지 잘 몰랐던 것 같다. 그래서 스무 살이던 시절에 그렇게 파랗다던 바다가 몹시도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선지원 후시험 깜깜이 학력고사를 마치고 난 뒤에 형이 일하던 울산에서 본 첫 바다는 진한 파란색처럼 우울하고 쓸쓸했다. 그럼에도 거칠게 치던 파도와 위태로운 부표 다리가, 그리고 비린내 나는 항구의 모습과 바다 사람들의 거친 사투리와 투박하고 일상적인 몸짓들은 낯설지만
나를 이방인으로 온전히 느끼게 하며
몸속 깊이 방랑의 기운을 자극했다.
그 시절 혼자 떠난 첫 여행은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는 11시 40분 통일호 막차였다. 30년도 더 지난 옛 기억이지만 신기하게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저녁 먹고 집을 나와 전철을 타고 아무 계획도, 표 예매도 없이 무작정 역에 도착했고 가출하는 청소년도 아닌데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식은땀을 흘리면서, 속으로 나만의 비밀을 간직한 마냥.... 가장 먼바다 강릉행 마지막 열차표를 샀다.
금요일 밤이라서 사람들은 분주했지만(이 시절 토요일은 휴일이 아님), 주변은 밤이 될수록 음침했고, 역 한쪽 거리는 붉은 등이 켜져 있는 위험 지역이었다. 술 취한 아저씨들은 연신 침을 뱉고 있었고, 건들거리며 돌아다니는 양아치스런(?) 젊은 아이들도 흔히 보였다. 구걸하는 아주머니와 담배 한 개비 달라는 인상 더러운 아저씨도 가끔 마주쳤다. 그 시절 청량리 역전은 우리의 힘든 시절을 대표하는 가난한 공간이었다.
그나마 역 앞에 롯데리아는 이런 야밤의 위험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피신처였기에 제일 싼 데리버거 세트를 사서 3시간을 버티기 위해 이어폰을 끼고 마이마이를 틀었다.
그때는 아니지만 청량리 역을 떠올리면 이 노래가 입가에 맴돈다.
김현철 <춘천 가는 기차>의 전주가 떠오른다.
https://youtu.be/82niqWPY6KE?si=79hC9We41bLicLmy
덜컹거리는 녹색 줄무늬 통일호 열차는 서울 근방 처음 듣는 역들을 지나치면서 점점 불 빛은 사라지고 열차 창을 봐도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만 보였다. 깜깜한 어둠의 산들을 지나 제천역에 도착하면 출퇴근하는 많은 사람들이 내렸고, 1~2시경을 지나면서 열차칸에는 손으로 셀 정도의 사람들만 남았다.
뭐 하러 나는 혼자 이 열차에 탔을까?”
하는 후회와 밤 열차의 긴장이 풀리면서 불편한 잠을 청했다.
도계에서 거꾸로 가는 열차의 흔들림에 잠이 깨고 사람 없는 강원도 산골의 어스름 새벽 풍경은 내 방황에 의미를 주는 것 같았다.
이 풍경 하나로도
묵호항을 지날 때쯤 세상은 밝아지기 시작했고 열차칸 사이 열린 문 사이로 바다의 비린 향내가 불어왔다.
새벽이라는 시간이 주는 신선함과 아침 바다의 파란빛이 정동진역을 지날 쯤에 내게로 왔다.
기차 운전사 아저씨의 개인적 배려였는지 모르지만 8 시간을 달리는 기차가 바다가를 지날 무렵이면 모든 열차칸에 이 노래가 울리기 시작했다.
바다는
보고 있어도 그립거나
슬퍼도 아름답거나
아련하지만 그리운
그 시절을 닮아서
이 노래와도 같다.
https://youtu.be/jHvgdslDts4?si=qy5UXJGMkIfzm-Ih
* 그 시절의 바다는 남아 있는 사진이 없어 요즘 바다로 대신하지만 지금과는 달랐던 것 같은…
-25. 10. 26. 로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