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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 운 Apr 04. 2024

거리에 지하철이 들어온 날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책 <지하철> - 아사다 지로


- 신지는 거리에 지하철이 들어온 날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나도 그렇다. 엄마 손을 잡고 처음 지하철 탄 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무렵 오후 6시가 넘어서 엄마와 어딘가로 가는 중이었다.


출발하기 전, 엄마가 2만원을 넣어둔 교통카드를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 비록 교통카드지만 인생에서 처음 카드라는 게 생겨 매우 기뻐한 기억이 난다. 역 안으로 들어가려 카드를 찍을 때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최대한 어른 흉내를 냈다. 처음 타본 지하철은 많이 흔들리고 쇠 냄새로 가득한 감옥이었다. 퇴근길이라 좌석이 없어 엄마의 바짓가랑이를 잡아도 몸이 많이 흔들렸다. '쿠쿠궁 쿠쿠궁' 지하철은 마치 바위를 흙밭에 떨구는 소리를 내며 30분을 넘게 달렸다. 그때 한 정거장에서 문이 열렸다. 엄마의 바지는 이미 놓은지 오래, 난 벽에 기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문이 열리자 내 앞에 있던 엄마가 문 밖으로 나가는 게 아닌가. "어! 어! 엄마 같이가!" 문이 거의 닫힐 때 쯤 그 여자를 발견하고 아슬아슬하게 지하철 밖으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그렇게 문 밖으로 나오자마자 이미 5미터 정도 멀어진 엄마를 보고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엄마가 아니잖아.." 본능으로 알 수 있었다. 본능을 무시하고 자세히 보아도 엄마가 아니었다. 지하철은 이미 다음 역으로 출발하고 없었다. 잘못 내린 그 역에서 기다린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가 와 혼나며 눈물을 펑펑 흘렸다. 이후에는 엄마의 바짓가랑이를 놓치 않았고, 그때 엄마 바지에서 나던 은은한 베리 냄새가 기억이 난다. 아무튼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이 경험 덕분에 여전히 혼자 지하철을 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버스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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