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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 운 Apr 20. 2024

별일 아니려니 했다

책 <네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 - 파트릭 모디아노


- 별일 아니려니 했다.



별일도 처음엔 별일이 아니다. 나비의 날갯짓, 물에 넣지 않은 개구리알, 심지 않은 씨앗과 별 다를 게 없다는 말이다. 바이킹에서 제일 안 무섭다는 중간 자리에 앉아도 안전바를 놓기커녕 고개도 들지 못하던 내가, 친구들에게 센 척하느라 맨 뒷자리에 한 번 앉아 본 뒤로는 더 이상 놀이기구가 두렵지 않게 됐다. 이렇듯 나의 간떙이처럼 처음엔 별일도 아주 작은 것에 불과하다. 오랜만에 보는 지인이 "별일 없지?" 한다면 나중에 감당하지 못할 만큼 커질 무언가가 나에게 있나 생각해 보는 게 어떨까. 어느새 지나가버린 벚꽃처럼 스쳐 지나가는 말이라도 정말 너에게 별일이 없나 생각해보렴 하는 뜻이 담겨있진 않을까. 


저번달에 장례식을 다녀왔다. 조문을 하고 친구들과 커피를 마시는데 한놈이 나에게 물었다. "형님은 별일 없으시지?" 우리 형은 암환자고 집에서 통원치료 중이다. 친구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다. "평소랑 똑같아, 다음 달에 병원 가는데 별일 없었으면 좋겠네" 머리를 쓸어 넘기면서 답하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어디까지가 별일인지 헷갈려서였다. 형 상태가 나빠지지 않으면 별일이 아닌 건지, 형이 호전되고 있으면 별일이 아닌 건지. 더군다나 우린 방금까지 장례식의 다녀온 검은 양복 차림의 조문객들이었다. 별일의 사전적 정의는 '드물고 이상한 일'이다. 모두가 '별일 없지?'라고 묻기에 별일이 있으면 안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형의 상태를 보면 나아지는 게 더 이상하고 드문 일이다. 그러하듯 형에겐 호전되는 일이 별일인 셈이다. 

  

그날 집에 들어가서 형에게 물었다. 

"햄아, 별일 없지?" 

"아까 거실에서 바오(반려견) 오줌 밟고 넘어졌다 시x ㅋㅋ"


똑똑한 우리 바오가 배변을 실수하다니 참 별일이 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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