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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숀앤펀 Feb 11. 2024

황금색 꿈, 엄마가 호주 온 목적은 사실...

10살 쇼니의 호주 한 달 살기

기분 좋은 일요일이다. 오늘은 맛있는 브런치로 하루를 시작했다. 일요일이라 엄마도 집에서 밥 차리기 귀찮은 눈치였다. 한국에서는 집밥이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호주는 엄마도 밖에 밥이 훨씬 더 맛있다고 하셨다. 

호주는 음식 검역이 심하다고 해서 최소한의 음식들만 싸 올 수 있었다. 엄마는 날 위해 매일 밥을 차려주시긴 했지만 이상하게도 모든 게 맛이 없었다.  한국에서 갖고 온 스팸과 라면도 여기에서 해 먹으니 한국의 그 맛이 아닌 듯했다. 특히 엄마의 주특기인 냄비밥은 현지쌀로 하니 영 찹쌀풀로 죽 쒀놓은 맛이었다.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스크램블 에그를 파는 곳으로 나를 데려갔다. 우리는 브런치세트와 플랫화이트 그리고 'babychino'를 시켰다.  이름부터 깜찍한 베이비치노는 폭신한 우유 거품에 코코아 가루를 뿌려준 어린이들을 위한 전용 음료다. 생긴 게 엄마가 자주 드시던 카푸치노와 꼭 닮았다. 어린이 전용음료는 뽀로로만 있는 줄 알았던 나는 나도 카페에서 분위기 있게 카푸치노를 먹을 수 있다니 갑자기 내가 어른이 된 것 같았다. 

 한국에서 엄마가 분위기 있는 카페를 찾아갈 때면 '노키즈존'이라 나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미리 알아보고 찾아가는 일 같은 건 못 하는 엄마는 늘 카페에 도착하고서는 들어가진 못하고 커피만 사 올 때가 종종 있곤 했다. 하지만 여기는 안심할 수 있었다. 

 

 나도 엄마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왜 '호주'인지 왜 '멜버른'에서 가장 오래 머무는지. 엄마는 물론 호주가 날씨도 좋고, 안전하고 시차도 차이 안 나서 이기도 하지만 그중에서도 멜버른이 첫 번째인 이유는 엄마도 행복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멜버른(Melbourne)은 전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커피도시라고 한다. 멜버른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이탈리아와 그리스 이민자들의 도착으로 시작되어 예술과 커피문화가 발전한 곳이라고 하셨다. 2,000개 이상의 카페와 세계 최고의 바리스타들이 있고, 거리에는 여기저기 알록달록 그림들이 멋스럽게 색칠해져 있는 자유와 낭만이 있는 곳이라고 했다. 

또한 엄마가 좋아하는 도서관, 미술관, 박물관이 무료며 다른 곳에 비해 규모도 크고 더 볼거리가 많다고 했다. 요약하자면 문화예술의 도시이자 커피가 맛있는 곳. 엄마는 멜버른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나 또한 어딜 가도 베이비치노를 주문할 수 있으니 엄마의 카페투어도 두 팔 벌려 환영할 수 있다. 

(사실 매일 수영만 하게 해 준다면야 베이비치노가 없다 한들 상관없긴 하지만 말이다.)


 맛있는 브런치를 먹고 근처에 있는 배트맨 공원과 야라강 주변을 산책하기로 했다. 배트맨 공원에는 정말 배트맨이 있는 걸까? 엄마와 나는 왜 이름이 배트맨 공원인지 궁금해했다. 배트맨 공원에 배트맨은 없었지만 모형 헬기가 있었다. 빨간색 장난감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 가니 진짜 헬기였다. 헬기 두 대가 사람들을 태우고 이륙을 준비하고 있었다. 프로펠러가 세차게 돌 수록 호수의 물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나는 헬기 모습을 카메라로 찍으려다가 바람에 밀려 그만 뒤로 날아갈 뻔했다. 그래도 헬기를 보다니! 난 아침부터 너무 신이 났다. 


멜버른 거리 곳곳에는 누군가가 알록달록 그림을 그려놓은 것을 쉽게 볼 수가 있다. 그림은 또 얼마나 다양하고 멋지게 잘 그렸는지 나도 어느 벽에다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거리에서는 신나는 음악도 흘러나왔다. 멋진 그림 앞에 신나는 음악이라니! 나도 기분이 좋아 음악에 몸을 맡겼다. 방송댄스로 다져진 실력을 여기서 뽐내는 건가. 나는 멜며들었다. 


 야라강을 따라 산책하는 길에 커다란 건물이 나왔다. 입구부터 번쩍번쩍 한 게 뭔가 재밌어 보여 엄마에게 들어가자고 했다. 그곳은 대형 오락실이었다. 건물 안에는 오락기 수 백개가 재미있는 소리를 내며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나는 당장 엄마 손을 끌고 오락기들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엄마는 오락기는 운이 좋은 사람한테 돈을 벌어다 준다고 했다. 나도 운이라면 자신 있는데!

하지만 오락실 앞에 도착하자 우리 아빠보다 두 배나 더 커 보이는 거구 흑인 아저씨가 입구를 막아섰다. 나는 구경만이라도 하고 싶어 들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사정을 했지만 흑인 아저씨는 단호하게 NO라고 하셨다. 아이는 들어갈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엄마도 아쉬운지 내 손을 놓고 아저씨에게 다가가 개미만 한 목소리로 물으셨다. 

"Would it be possible for me to go in alone?"

아마 구경만이라도 하면 안 될까요라고 묻는 듯했다. 흑인 아저씨는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웃으셨고 엄마도 함께 웃으셨다. 아저씨는 더욱 강하고 단호하게 엄마에게 "NOOO"라고 손가락까지 까닥하며 말씀하셨다.

 엄마는 호주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일하던 시절 대형 오락실에서 종종 돈을 벌었다고 했다. 엄마는 늘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진짜였나 보다. 엄마는 그 돈으로 맛있는 스테이크도 사 먹고 그곳에서 공짜커피도 마셨다고 했다. 아마 그때의 맛있는 음식들이 생각나서 그런지 엄마는 연신 입맛을 다셨다. 


 오락기의 환영에서 깨어 나오지 못한 듯 보이는 엄마는 갑자기 정신을 차리더니 오늘은 일요일이니 교회에 가자고 하셨다. 한국에서도 안 가는 교회를 여기서 왜?라고 물으니 엄마는 교회에 가면 맛있는 한식을 준다고 하셨다.

 엄마는 예전에 호주에서 한인교회에 다녔다고 하셨다. 우연히 들어간 한인교회는 피아노 반주자도 없이 무반주 열악한 환경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고 한다.  한 때 합창단 반주자였던 엄마는 그 모습이 안타까워 피아노를 쳐도 되냐고 물었고, 교회 목사님은 반색을 하며 엄마에게 피아노를 맡기셨다고 했다. 

예배가 끝난 뒤 엄마는 남들보다 곱절이나 많은 밥 한 끼를 얻어먹었다고 했다. 모처럼만에 대접(?)에 엄마는 신이 나서 그다음 주에도 그 다다음주에도 교회를 찾았고,  엄마는 그렇게 그 교회 반주자가 되어 반찬걱정 없이 호주에서 행복하게 지냈다고 했다. 엄마는 아마도 그때를 떠올리며 한인교회를 찾은 것 같았다. 엄마는 한식이 먹고 싶은 듯했다. 나 역시 너무나도 맛있는 밥 한 끼가 그리웠다. 

 

 호주 한인교회 예배는 2시에 시작했다. 엄마는 한국인들이 현지인 교회를 빌려서 예배드리기 때문에 11시에는 현지인들이 드리고 한인들은 2시에 드려야 하는 거라고 알려주셨다. 우린 배가 고팠지만 2시 예배 후 맛있는 밥을 먹을 생각하며 꾹 참았다. 그런데 여기 교회는 목사님 말씀이 1시간 30분이었다. 난 점점 지쳐갔고 배가 몹시 고팠다. 엄마를 살펴보니 엄마도 안색이 좋지 않았다. 배가 고프고 지루했던 나는 몰래 식당에 가서 무슨 음식이 나오나 침을 꼴딱 꼴딱 삼키며 부산스럽게 구경을 했다. 그러다 어떤 분을 마주쳤다. 

어떤 분께서 내게 몇살이냐고 물으시며 유치부 예배를 드려도 좋다고 하셨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전 10살이라 괜찮다고 말씀 드렸다. 그랬더나 그럼 초등부 예배를 드리라고 하셨다. 어른 예배보다 나을 것 같아 그리로 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곳은 영어로 예배를 드리는데 괜찮지 라고 다시 한번 물으셨다. 자존심이 두 번이나 스크래치가 났다. 중요한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니까. 나는 영어 예배를 드리러 갔다. 

 초등부 예배가 끝나고 엄마에게 갔는데 엄마는 아직도 예배중이셨다. 찬송도 하고 말씀도 듣고 헌금도 하고 드디어 끝나려나 생각했는데 이제부터 30분 동안 모여서 모임을 갖는다고 했다. 엄마는 그 말에 가차 없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가 너무 배고파해서였는지 아니면 새로운 사람들과 모임 하는 게 싫었는지 엄마는 난색을 표하곤 내 손을 잡고 교회밖을 빠져나왔다.


 엄마는 한식을 못 먹은 거에 대한 실망이 아주 큰 듯했다. 무더운 날씨에 브런치로 달걀 하나 먹고 한참을 돌아다니고 기다렸던 나는 한국이 그립다며 투덜댔다. 엄마는 주변 한인식당을 찾아보았지만 일요일 오후 4시라 대부분의 식당은 휴무 거나 break time이었다. 하는 수 없이 숙소로 돌아와 엄마는 짜파게티를 끓여주셨다.

밥이 맛이 없으니 짜파게티도 스팸도 비비고 맛김치도 모든 게 맛이 없었다. 난 엄마에게 이젠 모든 것이 너무 맛이 없다고 한국 음식이 그립다고 했다. 그 모습을 보니 엄마는 더욱 상심에 빠진 듯했다. 엄마가 너무 슬퍼 보여 나는 하는 수 없이 맛없는 냄비밥을 꾸역꾸역 먹었다. 


 우리는 기분전환하러 마트에 갔다. 역시 기분전환에는 쇼핑이 최고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팀탐 초콜릿 과자를 샀다. 그리곤 엄마가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에 엄마에게도 "엄마 사고 싶은 거 다 사"라고 말해주었다. 엄마는 내가 이렇게 말하면 활짝 웃곤 했다. 사실 어려운 게 아닌데 아빠는 왜 맨날 엄마가 뭐만 고르려고 하면 잔소리하고 엄마랑 신경전을 벌였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엄마는 사고 싶은 거 다 사지도 못 하는데 말이다.

어쨌든 엄마는 나의 그 말에 쪼르르 와인 가판대로 갔다. 한참을 흥얼거리더니 이내 한 병을 골랐다. 

동그란 금색 스티커가 붙어있는 게 아까 오락실에서 언뜻 봤던 노란색 칩이 생각났다. 

숙소로 들어와 나는 맛있는 팀탐을 먹으며 게임을 하고 엄마는 와인을 마셨다. 우리는 금세 다시 행복해졌다. 

엄마는 와인을 바라보며 황금색 꿈을 꾸는 듯했다. 왠지 내가 잠들면 나를 두고 혼자 오락실로 달려갈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오늘은 끝까지 안 자고 버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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