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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숀앤펀 Feb 12. 2024

태권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10살 쇼니의 호주 한 달 살기

 오늘은 근교로 나가려고 했더니 무슨 퍼레이드가 있어 몇 시간 동안 트램을 운행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는 계획을 변경하여 인근에 있는 빅토리아 도서관을 갔다. 할아버지랑 체스나 한판 붙을 요량으로 엄마한테 내가 가자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도서관 앞에는 체스는 안 보이고 대신 무시무시해 보이는 아저씨들이 가득했다.

 "Free Palestine! Free Palestine!" 

아저씨들이 우렁차게 소리쳤다. 그곳에선 팔레스타인 시위가 일어나고 있었다. 경찰도 많고 어쩐지 분위기가 삼엄했다. 엄마는 서둘러 여기를 떠나자며 잃어버리지 않게 엄마 손을 꼭 잡으라고 하셨다. 나는 가뜩이나 무서운데 엄마가 갑자기 손을 잡는 바람에 깜짝 놀라 엄마에게 성질을 냈다. 

"왜 내 손을 잡아당겨! 놀랬잖아!" 

나도 모르게 엄마에게 소리를 빽 질렀다. 엄마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오늘 아침엔 모자도 (두 번째로) 잃어버리고 짐도 엉망진창으로 해놔서 안 그래도 눈치껏 행동했어야 했는데 아뿔싸. 내 마음도 비상사태가 되었다.  

엄마는 더 이상의 자비는 없다는 듯 내 손을 휙 놓으시고

 "알아서 잘 따라와 그럼"하고 쏜살같이 가버리셨다.

나는 허겁지겁 엄마의 뒤를 쫓았다. 손을 잡으려 했지만 이번엔 엄마가 뿌리쳤다. 

나는 엄마의 가방 끝을 붙잡고 엄마 뒤를 쫓아갔다. 불안할 때 엄마 물건을 만지작 거리면 그래도 조금은 위안이 된다. 나는 횡단보도를 기다릴 때도, 거리를 건널 때도 엄마의 가방끈을 꼭 붙잡고 있었다. 가방끈으로 계란말이도 만들고 달팽이도 만들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엄마는  미술관에 가자며 방향을 틀었다. 그런데 이번엔 그만 중국의 설날 축제 행진하는 거리에 갇히게 되었다. 알고 보니 오늘 트램을 멈추게 했던 퍼레이드가 중국의 설날 축제였다. 

 행사를 관람하는 사람들이나 참여한 사람들 대게는 중국인들이었는데 이들은 호주 경찰 보호아래 각종 거리행렬과 공연을 하며 설날을 신명 나게 즐기고 있었다. 호주는 설날도 없는데 멜버른 도시 주인이 꼭 중국이 된 것 같았다. 축제는 전통춤과 함께 요란한 폭죽을 여러 차례 터뜨려 팔레스타인 데모하는데서 테러시위라도 난 줄 알고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정말 폭탄 터지는 줄 알고 많은 사람들이 소리치고 도망쳤다.


 엄마는 예전에서 중국에서 일할 때 자주 봤던 광경이라고 하셨다. 엄마가 경험한 중국의 불꽃축제는 여의도 불꽃축제와 같은 화려함과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고, 콩알탄 3000개쯤 동시에 터뜨린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하셨다. 또한 한 번에 끝나지 않고  계속 혹은 몇 날 며칠 불꽃이 터질 수도 있으니 어서 자리를 뜨자고 하셨다.  


 우리는 인파를 뚫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아침부터 지친 우리를 달래주는 건 역시 우리나라 음식일 테니 엄마가 호주에 와서 처음으로 한식당에 가자고 하셨다. 하지만 자리를 잡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 공연 행진이 이내 한식당 앞에 멈춰 서더니 한바탕 공연이 시작됐다. 바로 문 앞에 앉은 우리는 어쩌다가 중국공연 1열이 되었다. 심신이 지친 우리는 공연보다는 조용하게 밥을 먹었으면 했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자리가 만석이었다. 하는 수 없이 그대로 앉아 식사를 기다렸다. 

 

 잠시 후 공연이 절정으로 치닫으며 폭죽이 터지기 시작했다. 그것도 바로 식당 앞에서 말이다. 우리 바로 옆 식당 유리가 깨질 듯이 울리고 귀가 찢어질 것 같았다. 자욱하고 매캐한 연기가 열려있는 창문을 통해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화생방 훈련을 방불케 하는 가스에 엄마는 서둘러 티슈에 물을 적셔 나에게 코를 막으라고 하고 주셨다. 나는 눈과 목이 너무 따가워서 숨을 쉴 수가 없었고 어느덧 우리 밥 위에는 빨간색 폭죽 재가 소복이 앉았다. 

 엄마는 연기를 뚫고 바로 직원에게 음식들에 소복이 재가 쌓였다며 음식을 취소할 수 없는지 물었다. 직원은 이미 콜록거리느라 대답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뿌연 연기 때문에 얼굴도 제대로 보이 않았지만 컥컥거리며 "Ok, Sorry Sorry"를 외쳤다. 우리는 더 이상 1초라도 지체할 수 없이 목이 따가워지는 걸 느껴 서둘러 빠져나왔다. 우리 뒤를 이어 수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탈출했다. 

 왜 중국인 축제에 거리에 영업하는 식당들과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나는 투덜거렸다. 가족들이 모여 맛있는 음식을 먹고 세배하는 명절만 보낸 내게는 모든 것이 생소했다. 


 오갈 데 없는 우리는 결국 숙소로 다시 돌아와 컵라면을 사 먹었다. TV채널을 트니 토마스와 친구들이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설날 특집(?)이라 그런지 심지어 토마스와 친구들 마저 중국 여행으로 떠나는 장면이 나왔다. 

"아우, 왜 다 중국이야~"

나는 집에서까지 중국이라니 도대체 이해가 안 됐다. 

실제로 가는 곳 (동물원, 소버린힐, 퍼핑빌리 등)마다 중국인들 천지였고, 중국 홍등과 붉은 용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공항에서부터 숙소 체크인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엄마에게 "여기가 중국이야?"라고 물어본 적이 있을 정도다.


TV에서는 토마스와 친구들이 중국여행을 마치고 이제 끝나려는지 엔딩곡이 흘러나왔다.  

노래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Come on a joureny with Thomas & Friends All around the world and then back again

Big new adventures for all to see so much to discover in each country

We'll go to China, Australia, Spain, Peru, Kenya, Mexico the whole world thru.


 엄마는 가사를 보고 호주의 중국사랑을 이제는 알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호주 어린이들이 보는 만화에서 호주보다 중국이 먼저 앞에 나오다니. 공항에 도착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China First였다.

엄마는 호주가 여러 대륙에서 이민온 사람들이 정착한 곳으로 다문화를 존중하고 포용한다고 하셨다. 안 그래도 많은 중국인들은 호주에도 많이 이민 온다고 했다.  그래서 중국의 이런 행사나 문화가 자연스러운 것도 있겠지만, 중국은 호주의 주요 수출국이자 주요 관광수입원으로 여러모로 호주에 도움이 된다고 하셨다. 그래서 아마 대륙의 명절을 호주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축하해 주나보다고 말씀하셨다. 


 반면 우리나라는 토마스와 친구들 방문계획에는 없었다. 페루, 케냐부터 2절에는 일본까지 나오는데 왜 우리나라는 없는 거지? 궁금했다. 

엄마는 내가 어른이 될 때쯤엔 토마스와 친구들도 우리나라에 오고 싶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꼭 그랬으면 좋겠다.  


 숙소에서 쉬다가 우리는 National Gallery of Victoria에 또 가기로 했다. 세 번째 방문인만큼 엄마는 자신 있다며 NGV로 찍고 트램을 타고 찾아갔다. 그런데 막상 도착하니 모든 것이 낯설었다. 알고 보니 엄마가 찍은 곳은 ACMI 옆 NGV cafe란 곳이었다. 

어쩐지 자신만만하다 했다. 믿으면 안 됐었는데. 

ACMI 안에는 사람들이 무언가를 구경하고 있었다. 엄마는 직원에게 물어보더니 공짜라며 우리도 들어가 보자고 하셨다. 

"우와~ 여기 뭐야? 대박"

입구부터 스타워즈에 나올법한 영상들과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알고 보니 이곳은 영화, 텔레비전, 게임 등을 전시하는 전시관이었다. 엄마와 나는 연신 "대박! 대박"을 외치며 구경 삼매경에 빠졌다.


 그곳에서는 동그란 칩을 주며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칩에 찍어 보관할 수 있게 하는 신기한 입장권도 있었고, 재미있는 영상 촬영이며 체험까지 다양한 활동들을 할 수 있었다. 우연히 오게 된 곳이었지만 엄마와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왠지 앞으로 몇 번 더 방문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무엇보다 내가 가장 신났던 이유는 오락실처럼 다양한 오락기들로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거였다.

겔로그와 같은 옛날 게임부터 로블록스와 같은 최신 컴퓨터 게임까지 게임의 역사에 대해 전시하며 체험할 수 있게 되어있었다. 

 그중에서 엄마와 나는 스트리트파이터(I) 게임기 앞에 앉았다. 난 처음 해보는 게임이라 방법은 잘 모르지만 연신 두들기니 엄마의 에너지가 뚝뚝 떨어졌다. 내 팔도 떨어져 나갈 것 같았지만 꾹 참고 계속 두드렸다. 엄마의 비명소리가 커질수록 어쩐지 내 기분이 좋아졌다. 

 안 그래도 오늘 나한테 기분이 영 안 좋았던 엄마는 게임으로 날 잡으려고 작정한 모양이었다. 어찌나 두들겨 패고 아도겐을 쏴대는지 그만하라고 사정해도 소용없었다. 정말 치사했지만 나는 온몸으로 맡서싸웠고 엄마를 물리쳤다!! 오예! 

그렇게 신나 하고 있던 것도 잠시 구경하고 있던  중국 남자 어린이가 나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오냐, 너 잘 만났다.  내가 오늘 한국 대표로 대륙에게 받았던 서러움을 갚아주마'


나는 어깻죽지와 손가락들을 사뿐히 풀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한국에 있는 태권도 관장님의 우렁찬 기합소리와 늠름한 모습이 떠올랐다. 관장님이라면 그 누구라도 무찌를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누군가. 나는 그런 무적의 관장님께 배운 각종 줄넘기와 품새로 다져진 태권도 품띠, 대한민국 K-어린이다


 게임이 시작되었다. 나는 엄마와 했을 때보다 더 열심히 콧잔등이 땀범벅이 될 때까지 힘써가며 온몸으로 대륙의 어린이를 상대했다. 

'어라? 그런데 이 녀석 손가락 두들기는 폼이 보통이 아니네?'

야단법석 두드려대는 나와는 달리 대륙의 어린이는 느긋하게 피아노 연주를 하듯 게임하면서도 나를 요리조리 절단내고 있었다. 

"안돼!!!!!!!!!!!!!!"

이젠 엄마까지 난리였다. 대륙의 어린이의 아빠로 보이는 사람은 웃으며 대륙의 어린이를 향해 "하오더 하오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주변을 지나가던 중국사람들도 멈춰 서서 대륙의 어린이를 응원했다. 

엄마의 응원에도 안타깝게 나는 KO를 당했다. 엄마는 분했는지 엄마가 대륙의 어린이를 상대하겠다고 했지만, 이미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고 창피한 마음에 나는 자리를 떴다

 

에잇. 스트리트파이터에 태권도만 있었어도 이길 수 있는데.. 예쁘다고 츈리를 선택하는 게 아니었다. 흑.  

여러모로 대륙의 기세에 치이는 설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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