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주 차
얼마 전에 외출 준비를 하다가 시간이 좀 남아서 엄마가 켜둔 텔레비전을 멍하니 봤었다. 텔레비전에서 나오고 있던 드라마, <해를 품은 달>. 무려 10년도 더 넘었지만 여전히 재방송을 해주고 있었다. 남자 주인공 '이훤' 역을 맡았던 김수현 배우.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김수현 배우는 데뷔했을 때부터 좋아했었다. 데뷔작 이름도 댈 수 있다. 데뷔작은 <김치 치즈 스마일>이라는 시트콤이다. 지금이야 두 말할 필요도 없는 톱스타지만 데뷔작에서는 조연도 아닌, 조연의 친구 역할이었다. 그 후 한두 작품을 더 거쳐 <크리스마스는 눈이 올까요>에서 배우 고수의 아역을 맡아 라이징스타로 떠올랐고 <드림하이>를 거쳐 <해를 품은 달>과 <별에서 온 그대>를 통해 지금만큼의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
김수현 배우가 데뷔했을 당시의 그도 어렸지만 나는 그보다 더 어렸다. 그 어린 내가 어떤 모습을 보고 조연 친구로 나온 배우를 좋아하게 됐을까? 엄마가 틀어둔 텔레비전을 우연히 보던 그 순간 깨달았다. 웃을 때 개구지게 올라가는 눈꼬리와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모양을 그리며 올라가는 입꼬리. 그래, 저 웃는 모습을 좋아했었지. 지금도 여전히 좋아하고 응원하는 배우지만 아무래도 나이가 들수록 더 바빠지는 현실에, 좋아하는 마음이 한결같이 열정적일 수는 없다. 그렇지만 문득 마주한, 예전의 내가 반했던 그 웃음 짓는 모습에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다시 반해버렸다.
또 얼마 전에는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둘이나 같은 시기에 신곡을 냈다. (발표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조용히 공개하였다.) 하나는 밴드가수, 하나는 솔로가수. 먼저 밴드가수에 대해서 얘기해 보자면, 고등학생 때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처음 봤다. 고등학생이었던 나에게는 그들이 꽤 나이가 많게 느껴졌다. 요즘은 귀족처럼 자라온 모습이 인기 요소 중 하나지만, 그 당시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는 지원자들이 얼마나 힘든 상황에 있는지 혹은 얼마나 힘든 상황을 이겨내 왔는지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어린 마음에 그들이 그 나이까지 좋아하는 음악을 하고 있다는 게 걱정되기도, 신기하기도, 멋있기도 했었다.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그때의 그들보다 지금의 내가 더 나이가 많아졌고 그들은 여전히 밴드음악을 하고 있다.) 물론, 그들을 좋아한 이유는 그들의 음악이 좋아서였다. 그들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 그들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밴드 사운드가 좋았고 특히 경쾌한 듯하면서도 밴드 보컬치고는 왠지 감미로운 보컬의 목소리가 좋았다. 솔로가수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자면, 그가 살아온 이야기와 그의 성품을 좋아했다. 그를 먼저 알고 그다음에 노래를 들었는데 그의 성품이 담긴 듯 다정한 목소리와 그러면서도 시원시원하게 들리는 듯한 느낌이 좋았다. 두 가수 모두 신곡을 자주 내는 편이 아닌데 어떻게 마침 둘이 같은 시기에 신곡을 선보였다. 예전엔 그들의 앨범이 나온다고 하면 그날만 기다리다가 듣곤 했지만 이제는 그저 최신 앨범들을 따라가며 노래를 듣곤 한다. 그렇게 새로 나온 앨범들을 죽 따라가며 듣다가 그 둘의 노래를 듣게 되었다. 오랜만에 듣게 된 그들의 목소리는 팬이었던 사람만이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시간이 흐른 만큼 미묘하게 성숙해져 있으면서도 내가 좋아했던 느낌을 여전히 갖고 있었다. 그리고 노래를 듣는 순간, 나를 10년 전 그들을 아주 좋아했던 때로 돌아가게 했고 그들의 노래는 다시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
완전히 싫어지는 게 아닌 한, 좋아하는 마음의 불씨가 조금씩 사그라진다고 해서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 걸까? 내 관심의 초점이 다른 곳으로 옮겨 갔다고 한들, 좋아하는 마음이 예전만큼 열정적이지 않다고 한들 그 배우와 가수와 노래를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니다. 좋아했던 마음은 잠시 응축되어 작아져서 숨어있다가 어느 날 우연히 마주한 순간과의 화학 작용으로 다시 부풀어 오른다. 사랑했던 사람이든 사랑했던 순간이든 사랑했던 그 무엇이든 간에 그것을 우연히 마주한 순간 다시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는 없다. 그 마음은 뒤로 밀려나 잠시 한편으로 물러나 있다가 어느 순간 다시 앞쪽에 서게 된다. 그렇게 좋아하는 마음은 순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