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4주 차
마지막 강습을 끝내고 서핑을 했다. 육지 올라가기 전 마지막인데 파도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렇게 파도를 조금씩 타다가 무슨 파도를 딱 타고 나왔는데 '아 나 이제 진짜 여기까지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청나게 잘 탄 파도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엄청나게 못 탄 파도도 아니었다. 근데 그 파도를 타고 나오는데
'이번엔 여기까지.' 앞으로 서핑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이제 진짜 제주를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는 여한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 파도 딱 하나를 더 잡아타고 바다를 나왔다.
서핑샵에서 나에게 좀 상징적인 공간이 있다. 가게에 딸려있는 집이 한 채 있는데 거기가 원래 스탭들이나 강사들 숙소였다. 샵이 실제 제주 집터를 개조한 거라 생긴 게 딱 제주의 집처럼 생겼다. 손님으로 자주 올 적에는, 스탭들도 강사들도 다들 거기서 문을 열고 나오는데 그때는 손님인지라 거기를 들어갈 일이 없으니 미지의 공간이었다. 그리고 제주 살이를 하게 됐지만 아직 스탭으로 일하기는 전, 스탭 친구들이랑 친해지고 샵에도 드나들 일이 많아지고 같이 저녁을 만들어 먹을 일이 많아졌다. 그런데 샵에 냉장고나 전자레인지가 없기 때문에 그 집 안에 있는 냉장고와 전자레인지가 거의 공용처럼 쓰이게 됐고 그러다 보니 저녁 준비를 할 때면 그 방을 드나들 수밖에 없었다. 미지의 공간이던 그 집을 실제로 보게 될 줄이야. 정말 신기하게 생겼었고 실제로 보게 됐다는 사실 자체도 신기했다. 그러다 어떤 날에는 샵 마당에서 술을 마시다가 너무 추워서 결국 그 집으로 다 같이 들어가서 계속 술을 마시게 됐다. 내가 이 집에서 술을 마시게 될 줄이야! 그리고 스탭으로 일하면서 거의 시즌 마지막까지 남으며 여러 명의 스탭들을 보내고 나니 그 집은 비었고 마지막 3일을 내가 그 방에서 지내게 되었다. 미지의 공간이었던 곳에서 어느새 내가 잠을 청하고 있다는 게 문득 감회가 새로웠다. 그래 나 이제 정말 여한 없다.
여러 번 제주를 왔다 갔다 했음에도 여전히 아쉽지만 여러 번의 제주를 오갔던 중 가장 마음이 가볍게 떠났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가끔은 그 시간들이 아득하고 꿈같기도 하다. 나 진짜 거기 있었던 거 맞나? 그러다가도 또 가끔은 너무나 그립다. 어쩌면 나에겐 방학이었을, 긴긴 6개월의 방학을 잘 보냈으니 이제 다시 내 일상도 잘 살아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