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10년이라는 시간
2024년 11월 3주 차
인생 영화나 명작으로 자주 꼽히는 <비긴 어게인>을 나는 10년 동안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어떤 것 때문에 이 영화는 그렇게나 많이 회자될까 생각하며 봤는데, 어느 순간 내가 기분 좋게 웃으며 영화를 보고 있었다.
함께 노래를 만들고 부르던 그레타와 그녀의 남자친구 데이브. 하지만 데이브만 음반 회사와 계약하며 데뷔를 하게 되고 데이브는 스타가 된다. 스타가 된 데이브는 음반회사의 직원과 바람이 난다. 한편 음반 프로듀서였던 댄은 회사에서 해고를 당하고 우연히 들른 뮤직바에서 자작곡을 부르는 그레타를 보게 된다. 거기서 그레타의 재능을 본 댄은 거리에서 노래하는 밴드를 만들어 음반을 내자고 그레타에게 제안한다.
헤어졌던 그레타와 데이브는 화해를 하게 되고, 데이브는 그레타를 자신의 공연에 초대한다. 자기와 다시 함께 할 생각이 있다면 Lost Stars를 부를 때 무대에 올라와 함께 불러달라고 제안한다. 그레타는 공연장에 나타나지만 무대에 올라가지 않고 Lost Stars를 부르는 데이브와 열광하는 관객들을 보며 그레타의 표정은 오묘하게 변한다. 그레타가 만든 곡을 데이브가 부르고 있고 그 앞에서는 관객들이 그 노래를 부르는 데이브에, 그 노래에 열광하고 있다. 그레타는 처음엔 기대감에 공연을 기다리던 표정에서 어떠한 확신에 찬 표정으로 변하더니 그대로 공연장을 나가서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그리고 댄을 찾아가 자신들이 녹음한 음반을 직접 인터넷에 공개한다.
마지막 그레타의 표정의 의미에 대해서 각자의 해석이 분분하다. 내가 해석한 바로는, Lost Stars라는 노래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자신이 만든 노래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 줄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것과 동시에 이제 Lost Stars는 데이브의 노래임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노래를 공개해야겠다는 확신이 선 표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댄을 처음 만난 바에서 그레타는 친구의 손에 이끌려 억지로 무대에 올라갔고 거기서 자신의 자작곡을 부르지만 사람들은 관심이 없었다. 아마 자신이 또 음악을 사람들에게 선보인다고 해서 사랑을 받을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던 중 Lost Stars 음악을 좋아해 주는 수많은 사람들을 직접 눈앞에서 보고 자신의 음악에 대한 확신을 얻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Lost Stars를 부르는 데이브'에게 열광한 것이다. 거기서 그레타가 무대에 올라간다고 한들 '그레타가 부르는 Lost Stras'에 열광하는 건 아닐 것이다. 이제 Lost Stars는 데이브의 노래인 것이고 그레타만의 노래를 공개할 순간이 온 것이다.
영화 <비긴 어게인>은 2014년에 처음 우리나라에 개봉했다. 그 후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인생 영화로 꼽았다. 그래서 그런지 요새의 연애 감정이나 형태가 영화 <비긴 어게인>과 많이 닮아있는 듯한 느낌이다. 예를 들면, 그레타와 댄이 서로에게 묘한 호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누구 하나 선뜻 용기 내지 않고 애매하게 지내다가 결국엔 익숙한, 자신들의 전 애인에게 돌아가는 모습이라든가(사실 영화를 촬영할 당시에는 그레타와 댄의 키스신을 찍긴 했지만 최종적으로는 그 장면을 뺐다고 한다.) 그레타는 결국엔 데이브와도 함께 하지 않고 또 다른 자신의 삶인 커리어를 찾아가는 결말까지. 이 영화 이전에도 이런 형태의 모습들이 있었겠지만 이 영화 이후 더 많아진 느낌이다. 묘한 감정을 간직한 채로 이도 저도 아닌 관계 사이에서 애매한 줄타기를 하는 모습.
어쩌면 영화 개봉 후 10년이 흐르면서 영화의 영향을 받은 모양새일 수도 있지만, 그 사이에 나에게도 10년의 나이가 들면서 마냥 어릴 때의 연애 형태와 달라지며 그렇게 느낀 것일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