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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하랑 May 09. 2024

골프로 척추를 아작내는 여자


골프를 시작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유방암 수술을 한 여자가 1년도 안되어 무슨 골프같은 소리를 하냐 싶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골프에 대해 수집한 정보는 이러했다.      


"골프는 힘든 운동이 아니고 그냥 게임같은거라던데."     

"처음 배울때는 힘든데, 배우고 나서 필드에 나가보면 스트레스가 많이 풀린대."     

"채만 있으면 연습장에서 시간 때우기 좋지."     


 나에게 딱인 운동이라 생각했다. 별로 힘들지 않고, 비는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운동인데다가 초록초록한 필드를 보면 우울증까지 단번에 날려버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85년생 소띠는 뿔을 단김에 뽑는다. 바로 골프용품점에 가서 골프채 세트를 샀다. 골프는 시작하면 10년은 친다고 하니 어줍잖은 중고채보다 저렴한 새채를 사는게 나을 것 같았다. 게다가 난 팔을 그다지 자유롭게 쓰지 않는게 좋다는 유방암 환자니 젊은나이임에도 불구하고 50대 이상이 사용할 법한 낭창낭창한 채로 구매했다. 그러나, 유행하는 댄스챌린지를 금새 외워버릴정도로 몸을 잘 쓰는 나는 이 선택을 이내 후회하게 된다.      

     

여하튼, 골프를 시작하겠다고 SNS에 공표를 했더니 누군가가 ‘내기’를 하자고 한다. 내용인 즉슨, 1년안에 필드에서 100타 이하로 쳐야한다는 것이었다. 한 게임당 18홀을 돌아야 한다는 것도 잘 모르는 골린이는 그게 뭐가 어려우랴싶어 덜컥 알겠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골프를 시작하게 되었고 나의 병과, 남편의 간병에서 조금 멀어질 수 있게 되었다. 골프가 어쨌든, 내기가 저쨌든, 결과적으로는 나에게 이로운 것이었다. ‘강제’라는 것은 ‘자유’보다 긍정적 영향이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몇일 뒤, 실내 골프연습장을 등록하여 레슨을 받았다. 기본은 유튜브로 배워지지 않는 법이니까.


“어디서 운동하시다가 오셨어요?"


 레슨을 하는 프로는 나를 볼 때마다 칭찬을 늘어놓는다. 그게 아부든 진실이든 나의 자신감이 하늘을 향해 쑥쑥 솟았다. 왠지 그 골프 내기는 내가 이길 것만 같았다. 잘한다 잘한다 하면 더 신이나서 도를 넘어서는 소하랑은 남편이 하루에 두번씩 낮잠을 잘 때마다 골프장을 찾았다. 이쯤되면 조만간 박세리가 될 수도 있을 것만 같은 무모한 자신감이 솟았다.


골프장을 드나드는 횟수만큼 순조롭게 골프실력이 늘어나고 있었다. 진자운동을 기본 원리로, 공을 친다는 느낌이 아닌, 내 몸이 축이 되어 채를 던진다는 느낌으로 친다는 골프는 이미지트레이닝을 잘하는 나에게 잘 맞는 운동인 것 같다. 자신감이 대기권을 찌를 것만 같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골프가 끝나는 시간이 되면 감을 잡을 것 같은 느낌으로 아쉽게 연습장을 빠져나오게 된다. 나 역시 뭔가 감이 오는 느낌이 들었고, 300개를 넘어 320개를 향해 공을 마구마구 쳐 대던 중,


-뚝     


등에서 소리가 나더니 엄청난 통증이 몰려왔다. 나는 암환자이기 이전에 경추디스크 환자다. 디스크가 흘러 굳은 상태에서 재활을 마쳤었는데, 아무래도 그 부분이 터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큰일났다 싶어 서둘러 기존 진료를 보던 척추병원으로 향하기 위해 서둘러 정리하고 차를 몰았다. 통증이 너무 심해서 핸들조차 돌리기 어려웠고, 차 문을 열고 닫는 것 조차 힘들었다. 참 우스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골프를 하다가 디스크가 터지다니. 대체 얼마나 열심히 한 건지… 엄마에게 들키면 골프채를 고물상에 팔아버릴지도 모르니 당분간은 엄마를 만나지 말아야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척추병원에는 나와 같은 환자가 흔하다는 것이다. 특히, 이미 디스크가 발생한 곳은 다른 곳보다 약한 부분이라 다시 다칠 확률이 높다고 하며 신경주사와 진통제를 처방했다. 일단 쉬어보고 통증이 나아지지 않으면 MRI를 다시 찍어보기로 했으며 주사를 맞기 위한 진료대에 엎드렸다.

주사가 뜨끔. 하고 들어왔다. 그런데 예전에 아팠던 경추디스크의 자리보다 두마디 정도 밑이 아픈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하지만 어차피 통증주사를 맞으면 그 주변 부위에도 적용이 될 것이고, 통증이 가라앉지 않으면 MRI를 찍어서 디스크 부위를 정확히 살피면 될것이다.



  

올해 여름은 유난히 덥다고 한다. 지구 온난화가 점점 가속화된다고 하던데 이런 삼복더위에 목보호대라니! 게다가 예전에는 충분히 효과가 있었던 주사치료의 효과가 더디게 오는 것 같다. 다시 생각해봐도 이전의 디스크 자리가 아닌 것 같긴 한데 다시 mri를 찍으려면 실비처리를 위한 입원을 해야하거나 70만원의 쌩돈을 지불해야 한다. 그것은 초등아이의 육아를 하는, 뇌병변 환자를 간병하는 백수가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그래서 삼복더위에도 불구하고 예전에 구매해 두었던 목보호대를 착용을 선택한 것이었으며, 가급적 집에서 누워 쉬었더니 아주 미세하게 좋아졌다. 나이가 들어가는데다 유방암을 치료하기위한 타목시펜을 복용하면서 호르몬이 차단되니 몸이 노화가 되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수술 후 6개월이 지나 첫 정기검진을 받게 되었다. 암환자는 6개월마다 각종 검사를 하는데 5년이 될때까지 이루어지고, 그때까지 전이나 재발이 없다면 관해 판정을 받게된다. 검사의 종류가 많아 하루안에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몇일에 걸쳐 예약이 잡혔다. 초음파와 씨티와 본스캔을 하루에 받고 MRI는 4일 뒤에 받기로 했다.


 수술부위는 예상보다 조금 더 넓게 절제했고, 임파선에 약간의 전이가 발견되긴 했지만 심하지 않았으며, 코로나 소동이 있었지만 여차저차 방사선 치료도 했고, 영양섭취도 신경쓴데다 간병을 하면서 수면까지 잘 취했다. 개인적으로 암 치료법을 알아보면서 구충제요법이라든지, 커피관장요법, 간헐적단식도 해봤고 공기좋은 산으로 등산까지 다녔다. 지금은 암환자로 보지 않을정도의 건강한 혈색을 자랑한다. 자신이 있었다. 교수에게 ‘깨끗합니다'라는 말을 들을 자신이. 그러나 2주뒤, 검사결과를 듣기위해 찾은 대학병원에서 이상한 말을 듣게 된다.


"경추 쪽에 조영제 넣어서 MRI 한번 더 찍어보죠."     


 교수는 최대한 말을 아꼈고, 나도 특별히 묻지 않았다. 곁눈질로 본스캔 영상을 봤기 때문이었다. 화면에는 나의 뼈 영상이 찍혀있었고, 척추 쪽에 하얗게 덩어리진 무언가가 도드라져보였다.

‘찾았다’

골프를 치다 ‘뚝’ 소리를 내며 엄청난 통증을 몰고 온 정체모를 녀석을 드디어 찾아낸 것이었다. 그렇지않아도 그놈의 통증이 하도 낫지 않아 척추병원에서 mri를 다시 찍어야 하나 고민했었는데 대학병원에서 암산정특례로 찍을 수 있게 되다니. 나는 속으로 ‘산정특례만만세’를 외치며 교수에게는 골프치다 등에 통증이 생겼다는 일화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내겐 내 병보다 우리 가정의 경제적 상황이 더 우선순위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몇일 뒤 순순히 조영제를 맞고 기차소리가 요란하게 나는 MRI를 또 찍었다.


 또 몇일의 시간이 흘러 mri의 검사결과를 듣기 위해 다시 대학병원을 찾았다. 드디어 등의 미세한 통증까지 모두 가라앉았다. 디스크는 눕는 게 약이고 시간이 정답이다. 디스크가 아닌 그 무언가가 있었다면 계속 아팠어야 했을것이고 회복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그때의 ‘뚝’하는 소리는 디스크 수핵을 싸고있는 섬유륜이 찢어지면서 나는 소리였던 것이고, 디스크 수핵이 흘러 신경을 건드렸으니 아팠던 것이며, 시간이 흘러 디스크 수핵이 굳었으니 통증이 사라진 것이라는 자가진단에 확신이 들면서 그동안의 정체모를 불안이 종식되었다. 남편을 간병하다보니 골프실력만큼 의학지식도 일취월장하여 자신감이 안드로메다까지 향한다.

mri영상을 척추병원에 가지고 가서 수술이 필요한 상태인지 물을 생각이었는데 통증이 없으니 그럴 필요도 없어져 더욱 신이 났다. 나의 경이로운 회복력에 박수를 보내며 진료실로 입장했다.

하지만 마주한 교수의 낯빛은 어둡다 못해 잿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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