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서로의 삶을 이끌어주는 빛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길에 빛이 되어 주며 살아갑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멘트이다. ‘나의 돈키호테’를 읽고 발제를 하려고 하는데 책의 내용에 어울리는 멘트가 나와 깜짝 놀랐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서로에게 빛이 되어 줄 수 있다면 우리 삶은 참 살아갈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소설의 인물들은 서로에게 그런 빛이 되어 주고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은 따뜻하다.
소설의 서술자인 ‘나 – 진솔’은 방송국 PD이다. 아니, PD였다. 나름 능력이 있어서 자신의 아이디어로 프로그램을 성공시켰고, 성실히 활동했지만 결국은 다른 사람에게 밀려 실직하고 고향인 대전으로 내려오게 된다. 그곳에서 한빈과의 우연한 만남으로 예전의 돈키호테 비디오 가게에서 생활하게 된다. 비디오 가게는 한빈의 아버지인 장영수 씨가 운영하던 것으로 어릴 적 대전으로 전학 와서 외로웠던 진솔에게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 주었던 곳이다. 그곳에서 아저씨를 비롯한 라만차 클럽 회원들과 영화도 보고 책도 읽으며 마음의 위로도 받고 꿈을 키우기도 했었다. 그러나 지금 아저씨는 비디오 가게의 흔적과 돈키호테 필사본만 남기고 사라진 상태다. 진솔은 그곳에서 징영수 - 돈 아저씨를 찾는 유튜브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이 진솔의 삶에 빛이 되어 주었다.
둘. 좋은 사람의 삶을 지켜보는 것은 흐뭇하다
진솔은 돈 아저씨를 찾기 위해 그의 행적을 추적한다. 그 과정에서 법학도, 학원강사, 출판사 직원, 영화사 직원으로 살았던 아저씨의 삶을 마주하게 된다. 아저씨는 그가 좋아했던 돈키호테처럼 불의에 저항하며 정의롭게 살았다. 그러면서 사람을 따뜻하게 품을 줄 아는 좋은 어른이었다. 어렸을 때 솔이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래서인지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푸근했다. 좋은 삶은 사람의 마음을, 세상을 훈훈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셋. 사라지지 않는 삶의 흔적
진솔은 돈 아저씨를 찾기 위해 아저씨와 연관된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진솔은 자신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모습에서 향기로운 아저씨의 삶의 흔적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들이 아저씨를 그리워하고 있음을 알고 아저씨를 찾는 데 더욱 열정을 쏟는다, 많은 시청자들의 응원을 받으며.
부러웠다. 그러면서 기대했다. 누군가에게는 나의 흔적도 향기롭게 남아있기를. 나도 나름대로 좋은 삶을 살아보려 노력했으니까
넷. 산초가 된 돈키호테, 돈키호테가 된 산초
진솔이 찾아낸 돈 아저씨는 제주도에 있었다. 아저씨는 제주도에 사람들이 자유를 누리며 쉴 수 있는 '바라타리아'라는 공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은 이제 영주가 되어 섬을 잘 다스렸던 산초라며 돈키호테의 삶을 진솔과 한빈 들에게 물려준다. 자연스러운 세대교체, 특히 어른의 격려와 지원을 받으며 걸어가는 그들의 길은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 (316쪽) "아저씨가 쓴 거 영화로 나오면 내가 열 번 볼 거라고 했잖아요. 물론 영화감독의 꿈을 버리신 건 이해해요. 저라도 그렇게 고생했으면 때려치웠을 거예요. 하지만 너무 허무해요."
”미안하다."
"미안할 거 없어요. 산초로 한 몇 년 지내시다 다시 돈키호테처럼 도전하면 되죠. 영화감독."
"하하. 돈키호테가 산초가 될 순 있어도 산초가 돈키호테가 될 순 없단다."
"왜죠?"
"열정이 사라졌으니까. 열정이 광기를 만들고 광기가 현실을 박차고 나가는 인물을 만들거든. 나는 고갈된 열정 대신 현실에 발을 디딘 산초의 힘으로 돼지우리를 만들고 하몽을 염장할 거란다. 어른 진솔은 이제 아저씨를 이해해 줄 거라고 믿는다. “ -
- (415쪽) 돈키호테 비디오는 매개체다. 나도 매개체다. 여기 모인 우리는 모두 장영수 씨 덕에 만날 수 있었다. 고로 그도 매개체다. 인간은 서로에게 매개체다.(중락)
먼 옛날 이베리아반도의 늙은 기사와 동네 농부가 나눈 우정을 기록한 책처럼, 우리는 친구가 되어 행진해 왔다.
"모든 게 꿈같아."
내가 말했다.
“그 꿈 내가 찍어줄게."
민 피디가 말했다.
나는 그를 살짝 안은 뒤 유튜버 진솔, 일명 레이디 돈키호테 모드로 나를 전환했다.
다시 모험이 시작되었다. -
다섯. 재미있는 이야기
진솔이 돈 아저씨를 찾아가는 과정은 흡사 추리소설처럼 궁금증을 자아내서 책장을 빨리 넘기게 된다. 그러면서도 돈키호테의 뜬구름 같은 삶을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로 잘 엮었다. 젊어서의 패기와 나이 들어서의 물러섬까지. 읽으면서 작가가 뛰어난 이야기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읽어봐야겠다.
< 생각해 봅시다>
1. 비디오가게처럼 나에게 추억으로 남아 있거나 위안이 되는 공간이 있나요?
2. 내가 다른 사람의 삶에 흔적을 남겼음을 느꼈던 순간이 있나요? 아니면 내게 다른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음을 느꼈던 순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