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건, 주체성
공항 셔틀버스에서 만난 부부를 뉴욕현대미술관에서 마주친 적이 있었다. 셔틀 버스에선 고장난 유심을 물어본 찰나의 대화가 전부지만, 막상 외국에서 마주치니 그 찰나의 유대감이 순식간에 부풀어졌다. 어색했던 셔틀버스의 공기와는 달리, 아주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호들갑 떨며 반가워했다. 아내분이 몇박 며칠있다 가냐고 묻길래 5박 7일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남편분이 왜 이렇게 짧게 있다 가냐며 내 몫까지 아쉬워했다. 나는 궁금했다. 그들은 도대체 몇박 며칠이길래 이렇게 놀라는걸까.
“저희는 한달 가까이 여행해요.”
그렇게 길게 휴가를 빼주는 회사는 도대체 어떤 곳일지 의아했다. 대놓고 직장을 묻기가 조심스러워 자연스럽게 돌려 물었다.
“그렇게 길게 휴가를 빼주는 회사는 어떤 곳이에요?”
“아, 저희는 프리랜서 부부입니다.”
그날, 내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 명확하게 알았다. 돈 많은 것보다 시간을 자우롭게 쓸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었다. 자유로운 시간만 주어진다면, 돈을 덜 벌어도 된다고 퉁 칠 만큼, 그 부부의 일상이 자극제가 되었다. 5박 7일동안 발이 터져라 걸어다녀도, 뉴욕의 절반도 여행하지 못했다. 뚝뚝 떨어지는 미련을 주워 담으며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비행기라도 천천히 가주기를 바랐다. 시간을 인질로 잡은 회사가 대부분인 일상으로 돌아가기 싫었다.
한국에 돌아오고, 한 달은 멍하니 살았다. 마법이 풀린 신데렐라의 기분이었다. 신데렐라는 구해줄 왕자라도 있었지만, 나에겐 여행을 보내줄 왕자님이 없었다. 시간나면 뉴욕 사진을 꺼내봤다. 몇 없는 사진을 반복적으로 보니 사진 순서까지도 외워버렸다. 뉴욕의 향기를 찾아 얄팍한 앨범을 뒤적거릴수록 여행에서 남긴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생 사진을 건져온 것도 없었고, 기가 막힌 기념품을 챙긴 것도 아니었다. 이미 한국에 있는 몸으로 뉴욕을 남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글이었다. 애초에 뉴욕 여행을 결심하게 된 계기도 글쓰기였다. 일상에서는 도무지 얻을 수 없는 영감이 필요했다.
냅다 쓰면, 항상 마지막에 추진력을 잃어버리기에 읽어줄 사람들을 모았다. SNS에 뉴욕 여행기를 메일로 받아볼 사람을 모집한다고 홍보했다. 남을 쉽게 의식하는 나에겐 그것조차 용기였다. 인플루언서인 척하는 사람으로 보이면 어쩌나 걱정했다. 지인들까지 긁어 모아서 총 30명이 신청했다. 30명을 대상으로 주 2회씩 총 7개의 글을 써서 보냈다. 초인적인 힘이었다. 발송날이면 회사에 새벽까지 남아서 써냈다. 이상하게도 회사 일과는 달리 깨끗한 기분이었다. 회사일로 야근하고 온 날에는 온 몸에 심술이 가득했다. 회사가 나에게 도대체 해준 게 무엇인지 있는지 계산기부터 두들겼다. 그리고 투덜거리며 잤다가 투덜거리며 일어나 출근했다. 여행기를 써내는 동안에는 야근보다 더 힘든 작업이었음에도 기꺼이 했다. 심술내는 계산 하나 없이 끝내고 집 가는 길에는 오히려 개운했다. 핵심은 시간이 아니라 주체적인 자세에 있었다. 가끔 자유로운 시간만이 나를 해방한다고 착각한다. 막상 시간만 주어지면 고립된다. 지금 내가 무엇에 시간을 가장 많이 쓰고 싶은지가 중요하다.
여행기를 쓰고, 친구나 지인으로부터 연락을 많이 받았다. 여행기 너무 재밌었다는 말과 함께 글쓰기가 천직이라고 말해주는 친구도 있었다. 여행기를 마무리하니, 뉴욕 여행도 귀국한지 한달만에 막을 내리는 기분이었다. 미워하면 헤어지는 게 아니라는 식상한 드라마 대사처럼 그리워해서 여행을 끝내지 못한 게 아니었을까.
“(재)대구디지털혁신진흥원 2024년 대구 특화 출판산업 육성지원 사업“에 선정·지원 받아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