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에서 글쓰기를 빌며
경제금융을 딱 싫어하지만, 월스트리트를 꼭 가고 싶었다. 부정적인 사고는 지나친 욕심에서 비롯된다고 믿는다. 돈만 추구하는 삶에는 안전지대가 없다. 뻗어가는 줄기가 경제여도, 뿌리가 최소한 돈이여서는 안된다. 딸에게 먹고사는 이야기 밖에 해줄 수 없는 부모 밑에서 자란 탓인지, 경제 투자를 남들만큼 할 자신이 없어서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인지 모르겠다. 주어진 것 이상으로 무언가를 바랄 때, 이게 욕심에서 비롯된 바람인지를 늘 자문한다.
월스트리트는 이런 내 가치관과 상충하는 대표적인 명소다. 세계 경제의 중심지이자 미국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지역으로 거대 금융사들이 집약된 곳이다. 월스트리트는 1700년대에는 노예 거래 시장이 시초가 된 곳이기도 했다. 당시에는 최고의 경제 가치가 돈이 아닌 노예였으니, 지금의 월스트리트와 같은 속성을 가졌다. 영화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를 처음 봤을 때의 그 찝찝한 기분을 잊을 수 없다. 순식간에 떼돈을 번 사람이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지, 돈으로 여자를 노예처럼 부리는 모습까지 인상피고 보기 힘든 영화였다.
그럼에도 짬 내서 월스트리트를 가게 만든 명물이 하나 있다. 바로 주식 상승을 기원하는 의미의 ‘황소상’이다. (주식 가격이 상승세를 보이고 투자자들이 낙관적인 시장을 황소 시장(bull market), 그 반대를 곰 시장(Bear Market)이라고 한다.) 어딘가를 향해 돌진하는 황소상 주위로 사람들이 사진 찍기 위해 줄을 길게 서있다. 황소상을 만지면 좋은 기운을 가질 수 있다는 속설 때문이다. 특히, 재정적인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황소의 불알은 다른 부위보다 더 반질반질하게 닳아있다. 당연히, 나도 불알 줄에 섰다. 여행객들이 불알을 만지며 깔깔 웃는 장면은 보는 사람도 쿡쿡 웃게 만들었다. 내 차례가 되었다. 뒤에 서있는 한국인 커플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혼자 만질려니 머쓱했지만, 소심하게 손을 뻗어 불알을 만졌다. 사진의 민족답게 결과물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돌아서려는데, 문득 재정적인 소원을 빌지 않고 만지기만 했다는 게 생각났다. 생일 케이크를 소원을 빌고 초를 불어야 하는 것처럼 황소상도 똑같지 않을까. 찝찝했다. 꾸역꾸역 걸어온 이유가 이 소원 때문이었기 때문에 다시 돌아섰다.
‘글쓰기로 지금 월급만큼 벌게 해 주세요.’
아까보다 줄이 더 길어졌다. 다음 일정이 3개나 더 기다리고 있었다. 초조하게 기다리다 결단을 내렸다. 줄이 없는 황소 얼굴을 만지기로 했다. 소원을 읊조리며 얼굴 곳곳을 만지작거렸다. 주위 사람들이 봤다면, 얼마나 간절한 소원이길래 이렇게 문질거리나 했을 것이다.
황소 행운의 효과를 묻는다면, 절반이라고 답할 수 있다. 애석하게도 불알 행운은 들어줄 사람이 많아서 차례가 아직인지 소식이 없다. 역시, 욕심은 행운도 통하지 않는다. 다만, 뉴욕 여행기를 쓰며, 글쓰기에 대한 추진력을 얻었다. 뉴욕 여행기로 지원사업도 따내고, 글방 수업도 시작했다.
황소상은 부위별로 상징하는 바가 다르다. 재정적인 행운이 불알이었다면, 황소의 뿔은 성공을, 코는 강인한 집중력과 추진력이라고 한다. 간절히 더듬은 얼굴에서 코의 행운이 나에게 온 것일까. 재정적인 결과보다 과정을 원하니, 행운도 타이밍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