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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나정 May 02. 2024

북유럽의 집에 대한 가치관

집과 살림 문화에 대한 단상

스웨덴의 풍경은 아름답다. Björk라고 하는 흰색 기둥을 가진 얇고 긴 침엽수들이 산을 빼곡히 메우고 그 사이로 햇빛이 통과하며 아름다운 빛의 정원을 만든다.

하늘은 짙고 파란색의 공간을 연출하고 가지각색의 구름이 팔레트에 흩놓아진 수채화처럼 하늘을 메꾸는데, 자연 경관이 주는 무한함의 경지는 우리 존재의 소멸에 대해 인식시켜준다.


핀란드를 경유해서 Åland 공항에서 차로 40분간 달려 Ekerö라는 지역에 가면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판교 거리쯤에 스톡홀름 시내와는 전혀 다른 시골 풍경이 들어선다.

약혼자 K의 부모님이 거주하는 지역엔 스웨덴식 붉은색 목조 주택이 한가하게 이곳 저곳 들판을 지나면 몇 채 정도 모여서 군을 이루고 있는데,

넒은 정원에 아늑한 1층이 보이는 주택은 집에 들어설때마나 작은 설렘을 준다.

한국식 30평대 아파트에선 어느샌가 불필요해진 주방과 다이닝의 분리된 공간이 이곳에선 여전히 가족 식사에 대한 낭만을 가질 수 있도록 호수가 보이는 창가에 다이닝이 놓여있고, 앞마당이 보이는 창틀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주방 공간은 따로 구성되어 있다.

엄마가 저녁을 요리할때마다 달그락 거리는 주방의 소음은 곧 맛있는 식사가 시작된다는 설렘을 준다.


아파트 문화가 자리잡은 한국에서 어느샌가 거실과 다이닝, 주방의 구분없이 여러 가전제품이 한군데 집합되어 있어 냉장고, 전자레인지, 김치냉장고 등에서 나오는 웅웅거리는 모터 소음이 더해져 가만히 거실에서 쉬고 싶어도 TV 음향에만 가려지는 생활소음에 짧은 휴식마저 어렵게 만든다.


어쨌든 스웨덴에 왔으니 평화로운 전원 생활을 만끽해야지 하며 마음의 평온을 찾았지만, 문득 한국에서 평생 전업주부로 살아온 엄마에 대한 애틋함이 마음 한켠을 차지했다.

우리의 직업 정신이 가사일에도 깃들여 있다고 느끼게 해준 열혈주부로서 서울의 좁은 아파트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온 엄마는, 출퇴근과 오랜 근무 시간에 지쳐가는 가족구성원들의 손을 덜어주는 역할로만 치부되는듯, 살림의 중요성과 감사함은 자주 간과되었다.


비단 직장 생활 뿐만 아니라, 고등학교 시절에도 0교시 등교에 야자를 마치고 나면 거의 매 끼니를 학교에서 해결하곤 했는데, 주말도 다를바 없이 오후 온종일을 입시 공부에 열중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토록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대부분의 직장인과 학생들이 개인의 욕심으로 자처하는 삶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한국 사회는 상대평가와 시험이라는 끝없는 굴레에서 삶에 대한 감각을 잃어가고 경쟁심만 채워가는 듯 하다.
우리는 보금자리와 직업이라는 물질화된 삶의 조건들을 갖추기에만 급급하게 만드는 사회에서
사랑하는 가족, 연인과 테이블에 앉아 여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평일 저녁식사 등의 무형의 가치들은 무시된 채
삶의 온전한 형태를 잃어버린 상태이다.


집이라는 영혼의 안식처이자 신성한 공간에서 충분한 여유와 낭만을 갖지 못하는 삶에서 현대인들은 마치 지상을 떠도는 귀신처럼 불안하기만 하다. 적어도 북유럽 한 수도의 스톡홀름에선 오후 4시 퇴근길에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이는 하늘은 따뜻한 황금빛이 감돌고 온기가 느껴져 삶을 누리는 감각을 되찾게 해준다.

서울에도 곳곳에 매력적인 아기자기한 동네가 있지만, 아파트가 대부분의 도시 경관을 차지하고 있고, 서울 외곽인 수원 마저 다를바 없었다. 광교 호수를 둘러싼 고층 아파트들을 보며 자연 경관 주변으로 높게 솟아오른 아파트들로만 채워지는 신도시들을 보면 마음이 황폐해지는 기분이다. 수도 외곽에서라도 좀 더 고즈넉하고 전원적인 (Bucolic)한 삶을 지향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 좋을텐데.


자연속에서 만끽하는 여유로움과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은 카페와 상점에서 디저트와 옷을 고르는 짜릿함에 익숙해진 현대인에게 좀 생소할 수도 있지만, 물건처럼 누군가에게만 귀속되지 않고도 다같이 누릴 수 있는 것이기에 인간이 자연과 불가분한 존재임을 이해하게 되더라.

한국에서 산좋고 물좋은 곳을 따라 주택이 듬성듬성 지어지고, 개인의 고독을 햇볕 내리는 창가에 앉아 새소리에 기대어 명상으로 풀 수 있는 곳이 많아지길 바래본다.


호수의 지평선을 따라 노을이 보이는 곳에서 매일 저녁을 맞이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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