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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나정 May 13. 2024

북유럽의 결혼문화

결혼식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20대를 점차 벗어나면서 친구들이 하나둘씩 청첩장을 보내고 결혼식에 참석하다 보면 서울 곳곳의 웨딩홀을 방문하게 된다.

최근에 친한 고등학교 동창이 결혼을 해서 멀리서나마 스웨덴을 배경으로 축하 영상도 보내주었다.

부산 파크 하얏트에서 2부로 나누어 진행된 화려한 결혼식을 진행하는 모습이 부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웨딩드레스를 빌리는 데에만 900만 원이 소요됐다고 하는 얘기에

내심 결혼이란 타인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기 위한 어떤 과정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북유럽에서는 대체로 동거문화가 흔하게 자리 잡아서, 삼보(Sambo)라고 파트너를 칭하며 혼인신고는 하지 않은 채로 가정을 이루는 경우도 많다.

아이를 갖기 전까지는 대부분 동거 기간을 충분히 가지고 제도적으로 혼인 관계와 다를 바 없이 인정받기 때문에, 외국인일 경우 파트너가 스웨덴인이라는 증명을 통해 삼보(Sambo) 신분으로 스웨덴에 거주할 수 있는 자격 또한 주어진다. 자국민이 외국인 파트너를 위한 재정적 지원만 가능하면 되기 때문에 혼인 여부는 따지지 않고 동일한 주소로 6개월 이상 동거한 경우, 삼보(Sambo)로 칭할 수 있다. 이렇다 보니 스웨덴어학당을 가면 세계곳곳에서 파트너를 따라 삼보(Sambo)로 스웨덴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친구들이 대부분이다.


결혼식까지의 과정도 한국과는 조금 다른 형태인듯하다. 우리는 약칭 스. 드. 메를 위해 결혼을 계획하고 있는 커플들은 분주히 웨딩박람회나 웨딩에이전시를 방문해서 결혼식을 패키지 상품으로 강요를 받으면서 준비 1일 차부터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 에이전시의 매니저들은 어리숙한 커플들이 마치 꼭 해야 할 것들을 미루고 놓치는 모자란 이들로 치부하고 그들이 제안하는 ‘좋은’ 것들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길 강요당하곤 한다. 저마다 커플들이 생각하는 결혼식에 대한 아이디어와 실행 계획을 짜는 건 불가능하고, 규격화된 한국식 결혼문화에 맞추어 정원도 없고, 벽돌도 지어진 아늑한 건물도 아닌 상업용 건물 몇 층에 마련된 공간에 몇 달 치 월급을 쏟아부어야 한다. 시급으로 따지면 하루하루 리서치를 하며 안구건조증과 거북목을 얻으면서까지 몰두했던 업무에 대한 보상을 5-6시간 결혼식 진행을 위해서 투자해야 하는데 그것마저 상업화된 결혼시장에 호구 소비자 중 한 명으로 희생당할 뿐이다.


연애에서의 풋풋하고 연약한 감정들을 잘 다져서 결혼이라는 중대사까지 결심한 커플들에게 자본화된 결혼문화는 사회적 계급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인식만 확고하게 만든다. 가격별로 분류화된 예식준비처럼 우리의 인생도 한 범주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을 재확인시켜줄 뿐.


지방 대학에서 미대를 졸업한 후에 백화점에서 고급 다이어리를 판매하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촌언니는, 그래픽디자인에 대한 꿈을 놓지 못해서 서른이 다되어서 서울로 상경한 후에 양재에 위치한 작은 규모의 디자인 회사에 취업 후 밤낮없이 열심히 달리다 보니 어느새 38살이 되었다. 얄팍한 사장님 아래에서 주 3일 이상 야근을 해가며 8년간 버틴 경력으로 어찌 됐든 이직을 노려볼 만해지자 최근에 퇴사를 결심하고 몇 개월을 쉬던 도중 소개팅으로 5살 연하의 남자친구도 생겼고, 결혼까지 결심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경력에도 쉽지 않은 이직과 결혼식에 대한 비용 부담은 다시금 현실의 고뇌에서 벗어나기 힘들도록 만들고, 결혼 제반비용 마련을 위해 젊음의 희생을 강요당할 뿐이다.


물론 이게 한국사회의 문제로만 치부되긴 어렵지만, 북유럽에 비하면 이상하리만큼 긴 노동시간과 아파트의 회색풍경 속에서 우리는 열심히 살고자 인생에 집중하는데도 불구하고 어느 하나 쉽지 않고 날이 갈수록 더 어려워지는 것들만 늘어난다. 대부분의 서비스조차 상품화된 자본사회에서 우리는 결혼식마저 구매력을 테스트받게 된다. 무의식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찬양하고 감상하고자 하는 인간 기본 욕구에 대한 충족이 불가능한 도시 생활에서 그나마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들만 채우다 보면, 물질적인 것들이 내 삶의 전부를 이루게 된다. 개념과 인식을 물질과 동일시하게 되는 현상을 보면서, 결혼식이란 단어에서 물질이 아닌 의미와 뜻을 이해하고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Stockholm observatory


현대사회에서 단어와 의미가 구체화되고 다양해지면서 언어가 풍부해진 면도 있지만, 증명할 수 없는 개념과 가치들은 그만큼 도외시되는 듯하다. SNS에서 감상한 화려한 사진은 아름다움의 개념을 아이돌, 인플루언서와 동일시해 그들의 사진이 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닌다. 검색창에 언제든 내가 원하는 물건을 검색하고 찾아볼 수 있게 되었지만 시각화된 자극을 받아들이는 내 의식의 즐거움 저 너머로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갈망하는 무의식은 점점 억누르게 된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풍경, 흙 위를 애써 기어 다니는 개미떼, 햇볕을 쬐고 난 후 마시는 시원한 찬물 등은 그 존재의 가치를 어느 플랫폼에서도 증명받지 못하고 그저 몽상으로 치부될 뿐이다.


개인의 소유에 대한 집착이 높아질수록 여럿이 공유할 수 있는 자연과 같은 공공재에 대한 활용도는 그 중요성이 간과되는 듯하다. 아름다운 시청 광장, 도심 속 생태공원, 지방도시의 심미적 요소에 대한 고민은 왜 이루어지지 않는지. 장기적인 도시 계획을 통해 시청, 공원, 전통 가옥 등 일반 웨딩홀 보다 좀 더 합리적인 가격으로 공평하게 나누어 쓸 수 있는 장소가 많아질수록, 많은 커플들이 결혼까지 아름다운 과정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부모세대의 낡은 유산인 축의금과 웨딩홀 좌석 수에 고민하는 젊은 커플들이 안타깝고, 그럼에도 용기를 가지고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해야지만 변화할 수 있을 거 같다.


스웨덴의 결혼식은 교외 지역의 작은 교회나 오래된 오두막(Cottage)을 빌려서 진행하는 커플이 많아서, 기차를 타고 가야 하고, 주말을 다 쏟아야 하지만 그만큼 정말 가까운 가족과 지인들로만 구성돼 나의 취향과 분수에 맞게 인생의 새로운 날을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로 시작할 수 있다. 치열한 신부들의 전쟁 끝에 부모님들이 원하는 자녀의 모습을 예쁘게 포장해서 보여주는 학예회의 연장선이 되면 안되지 않을까.

Hagaparken, Stockho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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