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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림 Jul 22. 2024

당신의 별이 항상 빛나고 있으니까

워드에세이: consider, behave, act

   어린 시절, 개미는 항상 나의 놀이 동무였다. 우리 집에는 너른 마당이 있었는데, 마당에는 언제나 분주하게 움직이는 개미가 있었다. 작고 붉은 개미부터 크고 시커먼 개미까지, 줄지어 이동하는 모습을 쭈그리고 앉아 구경하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마당 밑에는 거대한 개미 제국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사람들이 쿵쿵거리며 지나가고, 비가 오고 눈이 와도 개미가 사라지지 않는 걸 보면, 그 제국은 엄청 튼튼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빛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땅속에서 개미들이 어떻게 길을 찾는지도 너무 궁금했다. 그래서 제국에서 기어 나오는 개미들 앞에 나뭇가지와 흙으로 미로를 만들어 보기도 했다. 가는 길을 이리저리 계속 막고, 구멍 주변에 벌레를 가져다 놓거나, 물웅덩이를 만들어 놓는 등 짓궂은 장난을 치기도 했다. 그런 장난은 난생처음 지하철이라는 걸 타러 지하 세계로 내려갔던 날까지 계속되었다.     


   처음 지하철이라는 걸 타러 지하 세계로 내려갈 때, 호기심보다는 무서움이 더 컸다. ‘길을 헤매면 어떻게 하지?’ ‘밖으로 나올 수나 있을까?’ 계단을 내려가는 순간부터 나는 거대한 개미 제국을 상상했다. 지하 계단을 내려간 순간부터 사람들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신기하게도 일사불란하게 왼쪽, 오른쪽, , 아래로 떠밀 듯, 밀리듯 움직였다. 지하철 문이 열리면 용암이 바위를 뚫듯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고, 흩어질 듯하다가 어느 순간 질서 있게 줄을 지어 움직였다. 개미들도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어린 나에게 그것은 충격이었고, 그날 밤 고스란히 꿈으로 나타났다. 나는 작은 개미 인간이 되었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개미들에게 끌려다니며 그들이 만들어 놓은 미로 속에서 밤새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무엇이 이런 신비하고 경이로운 움직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일까? 이유는 글자와 기호였다. 지하에서 바삐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천장에 매달리고 벽에 붙어 있는 무수한 글자와 기호들이 눈동자로 들어오면, 그제야 비로소 머리는 생각하고, 몸은 움직인다. 그것들이 없다면 머리와 몸은 갈팡질팡할 것이고, 지하 세계는 대혼란에 빠질 것이다.     


   이것이 비단 지하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해가 지고 밤이 되었을 때, 초기 인류에게는 지상도 그러했을 것이다. 생각한다는 뜻의 영어 단어, consider를 보면 지하와 같은 암흑 시간에 무엇이 그들의 글자와 기호가 되었는지 알 수 있다.     


   consider‘con-’‘sidus’가 합쳐진 말이다. ‘con-’은 모은다는 뜻이고 ‘sidus’는 라틴어로 별이나 별자리를 뜻한다. 그러니 consider별을 모은다라는 속뜻이 있다. 인간의 문명사에서 별자리는 인간을 비롯한 생명들에게 가야 할 곳을 안내해 주는 지침이었다. 칠흑 같은 어둠의 시간에 우리는 별자리를 보면서 생각했고, 길을 찾았으며, 내일의 복을 빌었다. 낙담한 사람은 땅만 보지만, 내일이 있는 사람은 하늘을 본다. 별은 예로부터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글자이자 기호였다.     


   그래서 그랬을까?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별을 갖고 싶어 했다. 그것은 꿈이기도 했고 권력이기도 했다. 왕은 별을 가진 사람으로 여겨졌고, 평범한 사람들은 최소한 별에서 어떤 메시지가 빛을 따라 내려오길 바랐다. 욕망이란 뜻의 desire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de-’는 중심에서 떨어져 나온다는 뜻이고, ‘-sire’는 별을 뜻하는 라틴어 ‘sidus’이다. 두 개를 합하면 하늘에 있는 별이 떨어져 나에게 왔으면 하는 간절한 꿈이 된다. 크리스마스트리 맨 위에 별 장식을 달아 놓는 것은 행복한 삶을 꿈꾸는 사람들의 소원이 현실에서 이루어졌다는 걸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별이 우리에게 생각을 주고(consider)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니, 이참에 행동한다는 뜻의 단어도 생각해 보자. 저녁을 먹다가 중학생 아들에게 물어보았다.     


“‘, behaveact라는 단어 알지? 이 말을 들으면 느낌이 어때?”

음…. behave는 잘 모르겠고, act는 활기찬 것 같은데. 우리 반 선생님이 나보고 액티브하다고 했거든. 하하하.”     


그래? behave도 잘 생각해봐. 어떤 느낌이 나는지.”

음…. 뭔가 선생님이 목소리 깔고 , 거기 뭐해?’ 이런 말 할 때?”     


너 수업 시간에 딴짓하냐?”

아니, 그건 아니고…. 생각해 보니 느낌이 완전 다르네. act는 밝고 behave는 어둡고.”     


   마지막 말은 뜻밖이라 얼른 메모해 두었다. 역시 말랑말랑한 10대의 머리는 표현력도 뛰어나다. 밝음과 어두움이라니. 듣고 보니 정말 그럴듯했다.     


   havebe를 붙이면 behave가 된다. havebehave는 서로 관련이 없을 것 같지만 사실 꽤 밀접하다. have는 고대어 ‘kap-’에서 유래되었는데 이 말은 단순히 뭘 가지고 있다기보다는 꽉 잡고서 놓지 않는다라는 뜻이 강하다. 어떤 것을 자기 통제 하에 둔다는 의미다. 여기에 ‘be-’는 우리말에 완전히’, ‘매우처럼 말 앞에 붙어 강조하는 효과를 낸다. 그러므로 behave는 생각을 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마음속에 담아두어(have) 절제한다는 뜻이다. 오늘날 behave행동한다라는 뜻 외에 예의 바르게 행동하다라는 뜻으로도 쓴다. 서양에서는 예의 바름을 절제된 행동으로 여긴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렇게 되면 ‘have to-’‘~해야 한다의 뜻인 것도 이해된다. 절제된 행동을 하니 뭔가 무겁고 의무감이 들 수밖에 없다.     


   behave가 절제의 어감을 준다면 act는 표출하는 느낌을 준다. act는 고대어의 ‘ag-’에서 유래되었다. ‘꺼내어 밖으로 내보낸다라는 뜻이다. 내부의 에너지가 밖으로 쏟아지는 역동적인 움직임을 상상해 보자. 다소 과장되어도 좋다. 감정은 요동치고 심장은 뛴다. 그러니 act가 연극 용어로 쓰여도 이상할 게 없다. ‘연기한다라는 뜻도 있고 2, 3막이라고 할 때 쓰는 이라는 뜻도 있다. 또 배우를 ‘actor’라고 부른다. active(적극적인), actual(실제의), agency(대행사), agile(민첩한), agitate(뒤흔들다) , ‘ag-’에서 유래된 단어에는 역동적이고 적극적인 이미지가 있다.     


   그러니 아들의 말이 딱 맞다. 설마 알고 말한 것은 아니겠지만 behave는 어둡고, act는 밝다. 빛과 어둠이 조화를 이룰 때 세상 풍경이 아름다워지듯, 절제의 behave와 분출의 act가 조화를 이룬다면 얼마나 좋을까.     


   누군가가 나에게 별이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면 당신이 곧 별이고 빛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당신이 없었다면 텅 빈 어둠의 공간이었을 것을, 당신으로 인해 공간이 채워지고 길이 생겨났으니 당신이 곧 빛이라고. 그것이 기적이 아니면 무엇일까? 하늘에 별이 있듯 지금, 여기, 이곳에도 수많은 별이 빛나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움직인다. 지상에서든 지하에서든, 그곳이 어디든, 당신의 별이 항상 빛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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